두 나라는 작년 7월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결정한 이후 중국 측의 폭력적 보복으로 큰 갈등을 겪어왔다. 이번 정상회담에 이어 12월 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 표면적 관계는 정상화될 것이다. 그러나 보복도 중국이 일방적으로 하고 관계 정상화도 중국이 보복을 철회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라면 정상적인 국가와 국가 관계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와 민주당에서는 중국의 보복 철회를 관계 정상화라고 보는 말과 행동이 이어졌다.
한국 측은 정상회담 후 '관계 정상화 합의'만 강조해서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불과 두세 시간 뒤 공개된 중국 측 '언론 보도문'은 전혀 달랐다. 시 주석이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을 재천명"했으며 "양측은 역사와 중·한 관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는 지난 10월 31일 '3불(不) 합의'를 지키라는 경고나 다름없다.
'3불'은 우리가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한·미·일 동맹' 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약속하는 내용이다. 사드는 추가 배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갈지 말지도 우리가 결정할 일이다. 그런데도 하지 않겠다고 미리 약속해줘 뒷날의 화근을 남겼다. 이번에 한·미·일 항모(航母) 훈련을 하자는 미측 요청을 우리가 거부하고 한·미 훈련만 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 있을 것이다. 이번에 시 주석이 앞으로도 그 약속을 지키라고 문 대통령을 대놓고 압박했다. 결국 이 나라 미래 주권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저당 잡히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했다. 일대일로는 시 주석이 중국에서 유럽과 북아프리카 거점 지역을 잇는 육상·해상 신(新)실크로드를 건설해 미·일의 대중 전략에 맞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 7일 한·미 정상회담 발표문에 들어간 '한·미 동맹이 인도·태평양 지역 핵심축'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미국 측 입장일 뿐 우리는 유보적이라고 했다. 결국 미국의 전략은 거부하고 중국의 구상엔 들어가는 듯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사흘 후 시 주석으로부터 "약속을 지키라"는 압박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북핵 해결을 위한 도움을 얻기 위해 중국 천안문 망루에 섰다가 한·미 관계가 미묘하게 틀어진 것이 불과 2년여 전이다. 이것이 국제 관계의 본질이다. 여기에도 약속하고 저기에도 약속하면 결국 나중에는 모두로부터 약속을 어겼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