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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friday] 젊은 아이디어로 생기 되찾은 '梨花의 뒷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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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梨大 오이길] 1990년대 '옷가게 골목'의 변신

조선일보

①추리소설 전문 책방인 ‘미스터리 유니온’. ②‘나무섬’의 주 메뉴 중 하나인 ‘영계섬’. 매장 이름을 따 재료 뒤에 ‘섬(island)’ 자를 붙인다. ③공예 숍 ‘▲■●(삼사오) 이꼼빠뇽’의 매장 모습. ④고양이 그림 상점인 ‘고고좋담’./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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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서울 신촌의 이화여대 정문 앞은 멋 좀 부린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이대길을 중심으로 골목마다 최신 유행 이끄는 옷 가게, 신발 가게, 액세서리 가게와 맛집이 줄지어 있었다. 미스코리아를 배출한 유명 미용실도 많았다. 지금은 동네마다 들어선 커피숍 스타벅스가 1999년 7월, 국내 첫 매장을 연 곳도 이대 앞이었다. 당시 이대 앞은 패션의 상징이자 유행의 집결지였다.

이랬던 '패션 메카' 이대길이 힘을 잃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온라인 쇼핑몰이 우후죽순 생기고 중국인 관광객의 필수 방문 코스로 자리 잡으면서부터 국내 '패피(패션 피플)'의 발걸음이 끊어졌고, 골목길에 빼곡히 들어선 옷 집들도 하나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상가 임대료가 오르면서 작은 가게들이 떠난 자리엔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섰다.

신촌 기차역길 방향으로, 이대 정문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돌면 나오는 골목길인 '이화여대길52'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상점들이 하나씩 문 닫으면서 이대 학생들에겐 쇼핑지가 아닌 '관광객을 피해 돌아가는 골목길'로 통했다. 그랬던 이곳이 최근 들어 다시 활성화되고 있다. 이화여대와 서대문구가 힘을 합쳐 만든 사업인 '이화 스타트업 52번가' 덕분이다. '이화 오이길'이라 불린다. 장기간 비어 있던 7평(23㎡) 정도의 가게를 이대가 빌려 창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마케팅과 홍보, 디자인 등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이를 통해 개성 있는 가게 20여 개가 탄생했다. 직접 디자인한 공예품을 파는 디자인 가게, 레스토랑, 서점까지 다양하다. 손님 중엔 이곳이 한때 옷가게가 밀집했던 거리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젊은 세대도 있고, 80~90년대의 향수를 가지고 찾는 30~40대도 있다.

▲■●(삼사오) 이꼼빠뇽 : 금속공예 작업실에서 만든 작품을 파는 공예숍이다. 반지, 브로치, 귀걸이 등 작가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판다. 차영순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섬유예술전공 교수 지도로 대학원생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2~3주마다 판매하는 상품이 달라진다. 가격대는 3만~20만원 선. 저렴하진 않지만,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아리송 : 언뜻 보면 문방구 같지만, 아니다. 이대 영상디자인학과 석·박사 학생들이 모여 만든 창의 교육 키트와 아트 상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아기자기한 용품들이 많아 하나하나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장난감에 최신 증강 기술 등을 접목시킨 것이 많다. 완성한 큐브 퍼즐을 '아리송'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대면 증강 현실 기술을 통해 큐브에 그려진 그림이 애니메이션으로 재생되고, 자체 제작한 영어 단어 카드를 인식시키면 스마트폰 화면에 단어가 뜻하는 그림이 보이는 식이다.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완성하는 장난감 DIY 키트를 주로 팔지만, 어른들의 흥미를 끌기에도 충분하다. (070)420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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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위샐러듀 2호점, ②오티스타, ③고고좋담./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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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스타 : 독특한 색감과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진 머그컵, 휴대폰 케이스, 접시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림을 좋아하는 자폐인들이 그린 그림들로 제작된 상품들이다. 이대 특수교육과 이소현 교수를 주축으로 자폐인의 디자인 재능을 활용한 상품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다. 보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 많다. 수익금은 이들의 생활 보조와 사회 통합을 위해 사용된다. (02)523-1714

고고좋담 : 고양이 그림 상점이다. '고고좋담'은 '고양이가 좋아서 고양이를 담았다'의 줄인 말. 사장 권혜진(27)씨는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뒤 이곳에서 고양이 그림을 그리며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고양이 일러스트부터 노트, 천 포스터 등은 물론, 직접 찍은 사진도 판매한다. 고양이가 길거리에 앉아있거나, 기와집 위에 올라앉아 있는 모습 등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기르는 고양이 사진을 가져오면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나무섬 : 새우, 흑돼지, 영계, 연어. 단 네 가지 메뉴를 파는 음식점이다. 나무 트레이에 반찬과 메인 음식이 담겨 나온다. 식당 안 파란색으로 칠한 테이블은 바다를, 음식이 담겨 나오는 나무 트레이와 음식은 섬을 상징한다. 벽 한쪽에 긴 구멍이 나있는데, 음식이 완성돼 접시에 담기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장 이주하(27)씨는 "학교 상권인 만큼 가격대(1만원~1만3000원)를 최대한 낮추려 했다"며 "밥에 소스를 비벼먹는 걸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음식 소스(국물)를 많이 주는 편"이라고 했다. (02)365-8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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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스타트업 52번가’ 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2015년 ‘이화여대길52’ 모습(왼쪽 사진). 상가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많은 가게가 문 닫았다. 그랬던 이곳에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개성 입은 가게들이 문 열며 찾는 이가 늘고 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서대문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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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샐러듀 2호점 : 붉은 고기 대신 해산물을 주로 사용하고 올리브 오일과 식초 기반의 소스를 뿌려주는 지중해식 샐러드를 선보인다. 지중해식 빵인 피타를 함께 주는데, 빵에 샐러드를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어도 된다. 샐러드라고 해서 애피타이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끼만 먹어도 금세 배가 찬다. 잎채소에 구운 새우와 오징어를 곁들인 징거 샐러드(8500원)가 인기다. 목욕탕을 콘셉트로 한 인테리어도 특이하다. 벽면에 흰색 타일을 붙이고 곳곳에 거울을 걸어놨다. '혼밥'하기 좋다. (02)363-0113

문학다방 봄봄 : 책방 겸 커피숍이자 문학인들의 공간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책에 대해 토론하고 낭독한다. 시와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문학 낭독 모임 회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작가와의 만남, 시 노래 콘서트 등도 진행한다. (070)7532-7140

괜찮은 책방 : 선물 가게 개념의 책방이다. 생일, 기념일 등 책 구매의 이유를 관계자에게 말하면 책을 추천해준다. 매달 제시하는 책의 주제어가 바뀐다. 책장 곳곳에 어떤 상황에 읽으면 좋은지 등 주인 임다해(30)씨가 손수 적어놓은 쪽지가 붙어 있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임씨의 배려다. 책방에는 책상이 놓여 있는데, 골목을 오가는 학생들을 위해 둔 것이라고 한다. (02)393-7297

미스터리 유니온 : 추리소설 전문 서점이다. 영국, 미국, 스페인 등 10개국의 추리 소설이 테마별로 분류돼 있다. 사장 유수영씨가 매달 한 가지 테마를 선정해 추리 책을 소개해준다. 이따금 책의 위치도 바뀐다. "매번 같은 장소에 책을 두면 묻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재미를 손님들에게 선사하고 싶어서"란다. 한 달에 한 번, 오후 7~9시까지 소리 내 단편 추리소설을 읽는 낭독회도 열린다. 인스타그램에 낭독회 관련 정보가 올라오니 검색은 필수. 갈색 나무로 된 인테리어가 매력을 더한다. (02)6080-7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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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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