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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상생으로 발전하는 ‘서울 남구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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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국동포 등 중국인·한국인 상인들 소통 위해 머리 맞대

상인대학에서 서로의 언어 배우고

시장 방송·신문에 2개 언어 함께 사용

하루 2만5천명 방문 서남권 대표 시장

31일까지 ‘가을 풍년 축제’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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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로시장의 오후 4시. 장 보러 나오는 동네 주민들과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남구로시장에 활력이 도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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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이 장사해도 값싸고 맛좋아야 산다잖아요. 남구로시장이 그래요.” 상인 하재윤(61)씨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는 곧이어 주변 상인들을 치켜세웠다. “상인들 의식이 깼어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매출을 뒤로하고, 뭉쳐서 공부했죠. 선의의 경쟁을 시작한 거예요.”

지난 13일 오후 4시께 방문한 서울 구로구 남구로시장의 상인들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자부심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남구로시장은 1970년대 구로시장의 상권 한 줄기를 타고 골목형 시장으로 들어섰는데, 오랜 시간 형편이 녹록지 않았다. 7년 전까지만 해도 장마철마다 홍수가 나서 모든 재산이 쓸려나가 절망을 반복했다.

하지만 올해 10월 현재 남구로시장은 하루 평균 2만5000여명이 다녀가는 서울 서남권 대표 시장으로 성장했다. ‘서울 대표 시장 20곳’에도 선정돼 동대문, 남대문 시장과 어깨를 견준다. 시설과 환경 면에선 더 현대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 활력을 만든 전통시장은 서울에서 남구로시장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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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로시장 대표 간식 중국식 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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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로시장은 1970년대 구로공단 배후였던 까닭으로 다루는 품목이 특화됐다. 1990년대 말부터 중국동포를 비롯한 중국인 집단거주지가 형성돼 외식이 익숙한 중국인들의 구매 습관이 시장에 영향을 줬다. 약 205개의 점포와 30여개의 노점이 있고, 파는 품목은 1차 식품과 생활 공산품, 중국 식품 등이다. 족발, 곱창, 중국식 호떡, 월병 등 퇴근길 가볍게 들고 갈 먹거리도 발달했다.

현재 530여명의 시장 상인 가운데 10%가 중국인(한족·중국동포 포함)들이지만, 한국인·중국인 상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시간이 걸렸지만 남구로시장 상인들은 ‘상생’을 택했다. 2015년부터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되기까지 상인들이 함께 노력했다. 국비를 지원받아 시원한 아케이드로 비를 막고, 골목을 넓혀 조명을 달았다. 상인들이 나서서 중소기업청이 마련한 상인대학에 다니며 주경야독했다. 서로의 언어도 배웠다.

목 좋은 시장 중앙에 ‘오작교방송국’을 열어 전문 비디오자키(BJ)를 섭외한 것도 ‘소통’을 위해서다. 한·중 동시자막으로 방송을 내보낸다. 약 80~100m 간격의 대형 스크린을 아케이드 천장에 설치해 상인들 누구나 소외되지 않도록 했다. 상인회가 발행하는 8면짜리 ‘남구로시장’ 신문도 한·중 두 언어로 발행한다. 새로 입주한 청년상인의 순댓국집 얘기부터 시장의 산증인인 40년 약초집사장님 이야기까지 두루 전한다. 닭강정, 족발, 양꼬치, 오리알 등 맛집 소식은 물론, 자치구 소식과 시장 정책 변화 등 정보를 폭넓게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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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콩, 고수 등 다양한 요리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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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이 소통을 시작하자 매출이 오르고, 상인들 얼굴이 밝아지자 손님들 발길이 늘어났다. 상인들은 아예 방송국 옆에 카페를 열어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판다. 손님들에겐 동네사랑방이 생겼다. 골목에 여유가 조금 깃든 것뿐인데, 동네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오는 11월부터 남구로시장은 200여대 자가용을 무료로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개방한다. 2년차에 접어든 ‘무료배송사업’ 범위도 확대해 단골을 늘리고, 신식 카트도 곧 운용할 계획이다. 남구로시장의 주홍(57) 상인회 회장은 “힘든 시절, 상인들이 답답해 장사를 놓고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유명 시장을 돌며, 인기 원인을 오래도록 토론했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전통시장 상인회의 방문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대형마트는 오너가 있어 명령 체계와 소통 방식이 잘 갖춰져 있지만, 전통시장은 개별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서로 잘된 사례를 나누는 것이 전통시장의 활로를 개척해나가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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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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