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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루터 종교개혁 500돌은 ‘자랑’ 앞서 ‘거울’ 삼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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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 ‘루터학자’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담임목사

한겨레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담임목사. 그는 애초 목사가 될 생각이 없었으나 독일 유학 중 만난 스승 한스 슈바르츠가 보여준 ‘기독교인의 삶’에 감화를 받아 루터교회 목사가 됐다고 했다. “유학 시절 슈바르츠 교수님이 전액 장학금을 받도록 주선해주셨어요. 너무 고마워 직접 김치를 담가 전했다가 많이 혼났습니다. 교수는 자기 학생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서 저에게 장학금을 엉뚱한 곳에 썼다고 하시더군요. 저도 펑펑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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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후암동에 자리한 중앙루터교회 겉모습만 봐선 올해가 종교개혁 500돌이 되는 해라는 걸 쉽게 알기 어렵다. 정문 입구에 소박하게 걸린 펼침막이 오는 28~29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500돌 기념대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릴 뿐이다. 16일 중앙루터교회에서 만난 최주훈(49) 담임목사는 외부로 드러내는 기념행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념행사의 목표는 뚜렷해요. 종교개혁의 역사가 세계를 바꿨다고 자랑하려는 것이죠. 개신교가 다른 종교에 견줘 우월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죠. 저는 다르게 봅니다. 루터 종교개혁의 핵심은 내부 개혁입니다. 종교개혁의 역사는 우리 현실을 보는 거울 구실을 해야 합니다.”

최 목사는 최근 <루터의 재발견>(복 있는 사람 펴냄)이란 책을 냈다.

마르틴 루터(1483~1546)는 1517년 10월31일 독일 비텐베르크 성체교회 문 앞에 교회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후세 사가들은 이날을 종교개혁의 출발로 잡았다. “100주년을 성대히 기념하려고 했으나 ‘30년 전쟁’으로 무산됐고, 200주년은 황제가 종교 분열을 우려해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300주년도 마찬가지였고요. 400주년 땐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죠.”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시절 부푼 마음을 안고 로마로 향했다. 하지만 로마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생각하는 기독교와 멀어지는 현실에 절망했다. 교황과 주교는 권력과 돈에 취해 면죄부를 남발했다. 교인들은 이미 죽은 가족도 ‘연옥’에서 구해낼 수 있다는 유혹에 속아 빚까지 냈다. 루터는 이때 성경 원전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사제들이 편의적으로 한 성경 해석을 폭로하고 비판했다. 세례를 받으면 누구든 사제가 될 수 있다는 루터의 ‘만인 사제론’은 개신교는 물론 서구 민주주의 토대가 됐다는 평이다.

28·29일 킨텍스 ‘500돌’ 기념대회
드러내는 행사보다 ‘내부개혁’ 중요
‘루터의 재발견’ 통해 한국교회 ‘질타’


2010년 목사 안수 이전 ‘담임’ 청빙
“루터 만인사제론 따라 권력 분립”
목회자 최저생계비 지원 ‘청렴보장’


최 목사는 책에서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자신이 종교개혁의 대상이 되었다고 썼다. 왜? “루터 신앙은 질문하는 신앙입니다. 시대적 조류에 계속 질문을 했어요. 루터는 질문의 힘으로 저항했죠. 루터파 철학자인 헤겔이 말한 ‘아우스뎅켄’(ausdenken)은 ‘끝까지 생각한다’는 의미죠. 헤겔은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시금석으로 질문하는 힘을 이야기했어요.”

지금 우리는?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목사의 권위에 모든 걸 맡기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신앙 좋다는 것은 목사에게 순종한다는 뜻이죠. 루터 종교개혁의 핵심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서 성경을 읽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루터의 ‘동지’인 요하네스 부겐하겐은 개신교 최초로 교회공동체 청빙에 의해 목사가 됐다. 당시 교회와 대학, 시민사회 대표가 함께 청빙위원회를 꾸렸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선 신앙은 물론 지성이나 청렴, 사회적 인격도 갖춰야 했다는 얘기이지요.”

그는 우리 현실에 빗대 “‘사회적 인격도 갖춘 목사’는 500년 전 루터가 우리에게 넘겨준 과제”라고 했다. 당시 루터 교회는 목사와 평신도, 시민사회 대표가 함께 열쇠를 돌려야 열리는 공동금고를 사용했고 교회 회의록도 투명하게 작성했다는 얘기도 했다. “한국 대형교회들은 헌금의 용처나 목회자의 보수가 투명하지 않은 문제가 있지요.”

한국 교회가 혐오의 진원지란 이야기도 들려온다. 루터라면? “상대 이야기를 경청해 그 논지를 정확히 알고 한자리에서 토론했을 겁니다. 이슬람 세력이 1529년 빈을 쳐들어왔을 때 루터는 십자군 규합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그들(이슬람 세력)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먼저 들어보자고 합니다.”

루터는 당시 민중의 언어인 독일어를 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종교개혁의 강력한 무기였다. “루터가 교회에서 마음이 떠난 뒤 수도원장 권유로 대학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때 성경을 읽고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루터는 라틴어 성경이 원전을 왜곡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표적인 게 ‘회개하라’를 ‘죗값을 치러라’라고 번역한 대목이다. “루터는 다른 사람들도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루터가 성경을 번역했을 때 이미 12종의 다른 독일어 번역본이 있었다”며 루터 번역본이 널리 읽힌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루터의 독일어는 시장통의 언어입니다. 루터는 어머니가 아기에게 말하듯 쉬운 언어로 써야 한다고 강조했죠.”

최 목사는 목사 안수 1년 전인 2010년 중앙루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됐다. 루터의 만인사제론이 이런 파격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루터대 신학과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거쳐 독일 레겐스부르크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루터의 정신을 목회 현장에서 실천하는 사례를 물었다. “권력분립이 핵심인 교회 정관을 만들었어요. 당회는 루터교단 헌법에 따라 담임인 제가 의장을 맡았지만 제직회나 공동의회는 의장을 따로 뽑아요. 6년마다 담임목사 신임투표도 합니다.”

현재 중앙루터교회 주일예배에 출석하는 교인은 160~170명 정도 된다. 국내 루터교회 49곳 가운데 두번째로 많은 규모라고 했다. “루터대 신학과는 매년 4명을 뽑아요. 교단이 재산운용 이익금으로 매년 교회 2곳을 개척하기 때문이죠. 교단은 목회자에게 최저생계비를 지원합니다. 목회자가 교세 확장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또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시스템 덕분이죠.”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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