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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쿠르드 독립투표 93% 찬성…軍 동원해 제압나선 이라크·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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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역사상 최초로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국가) 설립을 위해 25일(현지시간) 강행된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라크 중앙정부와 터키가 주민투표 강행 지역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란 등 주변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도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의 주민투표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쿠르드족의 염원인 독립국가 건설은 사실상 불가능에 도전하는 셈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날 AP통신 등에 따르면 KRG의 분리독립 찬반투표 결과 개표 비율 10% 기준으로 독립 찬성이 93%로 집계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의 공식적인 결과는 26일 오후(한국시간 27일 오전) 발표될 전망이다.

이번 주민투표 투표율은 약 78%이며, 전체 유권자는 약 534만명이다. 아랍계와 투르크멘계가 보이콧한 가운데 쿠르드계가 대거 투표장으로 향해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분석이다. 투표는 이날 오후 7시에 마감됐으며 투표소에서 곧바로 개표가 시작됐다. KRG가 이라크 중앙정부는 물론 주변국,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투표를 강행한 탓에 정치·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이라크 의회는 이날 긴급회의를 열어 KRG와 관할권 분쟁이 있는 모든 지역(키르쿠크, 디얄라주)으로 군대를 배치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권고안을 가결했다.

이라크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주민투표 지역에 키르쿠크가 포함된 것이 가장 못마땅한 점이다. 키르쿠크는 유전지대로 지난해 키르쿠크에서 생산된 원유 규모는 이라크 전체의 12%에 달한다. '돈줄'인 키르쿠크가 떨어져나가면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입기 때문에 이라크 중앙정부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란, 시리아 등 주변국이 이번 투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투표 결과가 구속력은 없지만 자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까지 동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4000만명에 가까운 쿠르드족이 동시에 들고일어날 경우 자국 영토뿐만 아니라 중동 전역의 분열도 걱정해야 한다.

이라크 국방부는 이날 터키와 이라크 국경지대에서 터키군과 함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터키 군부 관계자도 이날 이라크와의 합동군사훈련 실시를 확인하면서 훈련 실시 지역은 쿠르드 자치지역 바로 옆이라고 말했다. 터키군은 이날 성명을 발표해 "이라크 쿠르드족에 경고를 보내기 위해 지난주 시작된 군사훈련에 합류하려고 이라크군이 도착했다"며 "이로써 군사훈련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됐다"고 밝혔다.

터키가 이처럼 예민하게 대응하는 데는 자국 내 쿠르드족이 1400만명으로 가장 많기 때문이다. KRG의 원유는 터키 하부르 검문소를 거쳐 남부 제이한 항구에 도달한 뒤 지중해를 통해 이스라엘 등으로 수출된다. 터키는 또한 KRG의 대외 교역 길목인 하부르 검문소의 통행을 엄격히 제한했다. KRG에 대한 국제적 압박도 심해지고 있다. 이란·터키·러시아 정상은 24~25일 전화통화로 KRG의 '불법적인' 분리독립 투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란은 24일 이라크 정부의 요청에 따라 KRG를 오가는 모든 항공편의 영공 운항을 금지했다. 미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움직임으로 쿠르드 지역과 사람들의 어려움, 불안정성이 증대될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유엔도 "불안정하게 만드는 상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KRG는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기존 자치지역(아르빌, 술라이마니아, 도후크주)에 3개 지역(키르쿠크, 니네베, 디얄라주)에서 주민투표를 진행했다. 이라크 헌법상 이번 주민투표의 구속력은 없다. 그럼에도 KRG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투표를 강행한 것은 압도적 찬성을 근거로 이라크 중앙정부와 독립 주권국가 수립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한다는 복안이다. 찬반투표 실시 자체로 이라크 중앙정부를 압박해 더 많은 자치권을 얻어내려는 쿠르드족 지도자들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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