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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한-미, 최첨단 무기 도입 합의…동북아 군비경쟁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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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 대통령-트럼프, 미 전략자산 순환배치 확대 합의

북·중·러 등 주변국 반발 예상…한반도 긴장 고조될듯

한반도 긴장 틈타 무기 파는 ‘트럼프 상술’ 지적



한겨레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2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동안 맨 앞줄에 앉은 북한 대표단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뉴욕/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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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행보가 21일(현지시각) 극과 극을 오갔다. 유엔 총회장에선 한반도 평화의 절박성을 호소하며 북핵 해법으로 평화적·외교적·정치적 노력을 강조했으나, 이후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선 최첨단 무기 도입에 합의하며 동아시아 군비경쟁의 궤도에 올라탔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불과 1시간 전쯤, 문 대통령은 유엔 총회장 무대에 올라 ‘평화’와 ‘촛불’을 열쇳말로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칫 지나치게 긴장을 격화시키거나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북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 관여했던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문 대통령 유엔 연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평화는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을 뜻한다’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라며 “평화는 평화적 수단으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엔 연설 이후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최첨단 무기를 도입하거나 자체 개발해 국방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한국과 주변 지역에 미국의 전략자산 순환배치도 확대하기로 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정상회담 직후 브리핑을 통해 “두 정상은 북한의 위협적인 행동을 억제하고 비핵화를 향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최고 강도의 압박과 제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선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에 대해 “대단히 강렬한 연설을 해줬는데 저는 그런 강력함이 북한을 반드시 변화시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북한을 한껏 자극한 트럼프 대통령의 ‘완전파괴’ 발언에 맞장구를 친 셈이다.

문 대통령이 최첨단 무기 도입·개발에 합의한 것은 무기 수출을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자주국방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비스트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만큼 무기계약·판매승인에 열을 올려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1100억달러짜리 무기 판매 계약을 맺었고,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데도 대만에 13억달러어치의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그가 해외 무기 판매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의 국내 정치 기반과 깊은 관련이 있다. 록히드마틴·보잉 등 미국의 방위산업체는 미국 내에서도 연봉이 높은 ‘질 좋은’ 일자리로 꼽힌다. 또한 무기 구매는 워낙 큰 규모로 거래되기 때문에 후방산업 등까지 고려하면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한 군대 재건’을 내걸고 내년도 국방예산을 10% 증액시킨 것도, 자신의 적극적 지지 기반인 백인 노동자층의 방산업체 일자리를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도 있다.

문 대통령이 첨단무기 도입에 관심을 쏟는 것은 미국의 도움 없이도 북한의 위협에 독자적으로 맞설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북한 지도부 정밀타격 전력인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대량응징 보복체계 등 ‘3축 체계’ 조기 구축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해 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독자적 억지력 확보와 자위권 증대의 핵심이다. 문 대통령은 핵추진잠수함 도입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왔다. 첨단 무기 도입은 북한의 위협에 따른 보수층의 안보 불안을 씻어내고, ‘강한 안보 대통령’이란 모습을 각인시키는 국내 정치적 효과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북·중·러 등 주변국의 우려와 반발이 커질 것이란 점이다. 우리의 방위력을 높이면 주변국이 위협을 느껴, 기존에 우리가 느끼던 위협이 더욱 커지게 되는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다. 한반도 긴장 고조를 무기 판매의 ‘호재’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술’에 점차 말려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함께하는 한-미-일 정상 오찬을 갖고 3국 공조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이 또한 문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강조한 다자주의와 거리가 멀다. 그는 유엔 연설에서 “북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엔 헌장이 말하고 있는 안보 공동체의 기본정신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도 구현돼야 한다”며 “동북아 안보의 기본 축과 다자주의가 지혜롭게 결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다자주의’ 구상의 밑그림은 북핵·미사일 해법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2005년)과 그 이행계획인 2·13 합의(2007년)에 담겨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폐기로 나아가는 단계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 △북-미, 북-일 수교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등을 맞교환하는 방식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완성 단계에 이르면, 6자회담 참가국이 안보-경제공동체를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한-미 동맹을 축으로 한 3국 공조는 현존하는 북핵·미사일 위협에 맞서는 데 유용하지만, 북·중·러와 갈등·경쟁 구도를 빚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현재로선 북한을 압박해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해 3국 공조 체제가 유지되고 있지만, 북핵 해법 국면에선 다자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며 “3국 공조 틀 내에서 다자주의로 점진적으로 이동해나가기 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모양새”라고 짚었다.

정인환 김지은 기자, 뉴욕/김보협 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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