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인’ 지정을 둘러싼 논란… 합리적 결과냐, 과도한 규제냐
‘예정된 수순’일까, ‘긁어 부스럼’일까. 올 국정감사장에 네이버 이해진 전 의장(현 글로벌투자책임자)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것도 현 직책인 투자책임자로서가 아닌 대기업의 ‘총수’로서 말이다.
네이버는 9월 4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57개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포함되면서 명실상부한 ‘대기업’이 됐다. 그리고 네이버의 총수를 의미하는 ‘동일인’으로는 이해진 전 의장이 이름을 올렸다. 네이버가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들어가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동일인으로 이 전 의장이 지정되는 건 네이버에도, 이 전 의장 자신에게도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 공정위 발표가 난 직후 네이버는 “동일인 지정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 검토 방침을 밝혔다.
■이번엔 더민주에서 “이해진 나와야”
네이버가 반발하면서 사안은 이 전 의장의 동일인 지정이 합당한지를 놓고 갑론을박의 논쟁으로까지 번진 상태다. 이 전 의장을 다른 재벌 총수들과 같은 잣대로 바라보는 게 불공평하다는 반론도 있는 반면, “왜 그렇게 동일인 지정을 싫어하는지 국감장에서 들어보자”는 의견도 있다. 이 전 의장을 둘러싼 논쟁과는 별도로 경제민주화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출범을 맞아 그간 논란이 돼온 네이버의 골목상권 침해문제 등 이른바 네이버의 ‘갑질’ 문제가 국감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주간경향> 취재 결과 여당의 한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 이 전 의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 국정감사는 10월 12일부터 열린다. 국감에 증인으로 채택되면 적어도 국감 시작 일주일 전까지는 해당 증인에게 출석 통보를 해야 한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유난히 긴 탓에 출석 통보 일정을 감안하면 늦어도 9월 말까지는 증인명단을 확정해야 한다. 국감에서 증인채택은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확정된다. 이 때문에 이 전 의장이 증인 출석 요구를 받게 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특이한 점은 이 전 의장 증인신청에 나선 곳이 민주당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과거 야당 시절 네이버의 국감 출석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당시 여당(현 자유한국당)의 공세를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포털 독과점과 편향적 언론관 등을 이유로 네이버를 출석시켜 추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민주당은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포털을 억압할 수 있다며 맞섰다. 2015년에는 여당에서 이해진 당시 네이버 의장에 대한 증인신청 요구를 하기도 했지만 민주당의 반대 속에 실현되지 않았다.
그랬던 민주당에서 올해는 왜 이 전 의장에 대한 증인신청에 나섰을까. 재계에서는 네이버가 대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정부의 본격적인 규제가 시작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네이버는 2013년 공정위 조사에서 키워드 검색 등과 연관된 다수의 불공정행위가 포착됐다. 당시 네이버가 1000억원을 출연해 상생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고, 공정위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른바 ‘자진시정’으로 불리는 ‘동의의결’로 처벌이 일단락됐다.
이후 네이버는 실제 자금을 출연해 집행했고, 포털 검색 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업 확장 과정에서 계열사가 최근 74개(자체 공시 기준)로 불어나는 등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주요 경제 공약으로 중소기업 활성화, 소상공인 보호 등을 제시한 문재인 정부에서 이제 엄연한 대기업이 된 네이버도 국감을 통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여당 관계자는 “네이버는 정보기술(IT) 업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라며 “국감에서 골목상권 침해문제는 없는지, 갑질 문제는 없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행정소송 안할듯
이 전 의장 증인신청에 대한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는 여당이 이 전 의장 소환에 나설 경우 ‘포털 장악’ 등과 같은 부정적 여론을 조성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관건은 야당에서 증인채택에 동의해줄지 여부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경우 이 전 의장의 증인채택을 요구했던 전력 등을 감안하면 이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네이버의 뉴스 배치 등이 좌편향돼 있다는 주장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의 경우 일단 안철수 대표가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터라 동의 여부가 불투명하다. 김 위원장이 네이버의 총수로 이 전 의장을 지목한 직후 가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 전 의장을 애플 창업자인 고 스티브 잡스와 비교한 것이 원인이었다. 안 대표는 “정치가 기업과 기업가를 머슴으로 보는 오만함과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비판했고, 논란이 확산되자 김 위원장은 “무겁게 받아들이겠다”며 한 발 물러선 상태다.
네이버가 공정위의 결정에 반발한 사안은 크게 이 전 의장에 대한 동일인 지정과 현재 네이버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 회사의 계열사 편입 문제다.
동일인 지정의 경우 네이버가 바랐던 시나리오는 동일인이 없는, 일명 ‘총수 없는 대기업’이었다. 네이버는 이미 지난해부터 올해 대기업집단에 편입될 것을 예상하고 부지런히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되기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했다. 작년 말 이 전 의장이 오랜 기간 재임했던 의장직을 내려놓고 “유럽 시장을 공략하겠다”며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전 의장은 올해 자신의 네이버 지분 일부를 매각하며 회사에 대한 지배력 유지나 자녀 세대로의 경영세습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네이버의 임원들이 지난해부터 네이버 지분을 순차적으로 매각한 것도 총수 없는 대기업 지정을 위한 작업으로 풀이하고 있다. 특정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될 경우 그 특정인이 임명한 임원의 회사 보유 지분도 지배 지분으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네이버 관계자는 “임원들이 매각한 주식의 지분율은 0.064%로 극히 일부”라며 “이를 대기업 지정문제와 연관짓는건 억측”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작업으로 이 전 의장의 네이버 지분은 4.31%까지 줄었다. 주주 구성 현황만 놓고 보면 10.7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나 5%대 지분을 보유한 해외 펀드들보다도 지분이 적다. 여기에 이 전 의장이 네이버를 제외한 다른 계열사 지분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점, 네이버의 경우 계열사 대부분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등 지배구조가 단순하고 투명한 점을 들어 민간기업으로는 국내 최초로 ‘총수 없는 대기업’이 된다는 게 네이버의 목표였다. 이 전 의장은 임원들과 함께 직접 김 위원장을 찾아가 네이버의 이 같은 취지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한때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이 전 의장 성향을 감안하면 ‘총수 없는 대기업’ 지정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 전 의장이 실질적으로 네이버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며 동일인으로 이 전 의장을 지목했다.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 이유로 단순 재무적 투자자를 제외하면 이 전 의장의 지분율이 매우 높은 점, 사내이사 임명 등에 이 전 의장이 유일무이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 등을 들어 이 전 의장이 네이버의 총수가 맞다고 판단했다.
네이버가 동일인 지정에 실망감을 나타내며 법적 대응을 거론하긴 했지만 적어도 이 전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정위 시행령 등에 보면 동일인 지정 요건을 아주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해당 조항과 이 전 의장의 위치 등을 봤을 때 동일인 지정은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네이버의 한 관계자는 “내부 법무팀 등을 통해 검토해본 결과 동일인 문제에 대한 행정소송을 할 경우 승산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며 법적 대응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했다.
■동일인 지정은 기업가에게 ‘족쇄’인가
다만 네이버는 변대규 회장 개인의 회사까지 네이버의 계열사로 편입된 상황만큼은 공정위에 이의제기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변 회장의 경우 이 전 의장과 친족관계도 아니고, 네이버와 지분이나 금전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도 없다. 변 회장의 경우 이해진 전 의장의 요청으로 네이버 의장직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회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변 회장의 개인회사까지 공시의무 등을 지는 건 지나친 규제”라고 밝혔다.
네이버와 공정위가 소송전을 벌이지는 않더라도, 이 전 의장에 대한 동일인 지정이 과도한 규제인지 여부를 놓고는 한동안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가가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여러 규제를 추가로 받게 된다. 우선 본인은 물론 배우자 및 6촌 이내 혈족 등이 보유한 회사와 동일인으로 지배 중인 회사 간 거래내역을 모두 밝혀야 한다.
총수 사익편취 규제도 받게 돼 이 전 의장의 개인회사로 알려진 지음 등 3개 회사가 공정위의 감시 대상으로 오르게 된다. 무엇보다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을 동일인이 져야 한다는 부담이 생긴다. 당장 올 국감에서 이 전 의장이 증인으로 채택될 경우 스스로 “공개석상에 나서서 말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밝힌 이 전 의장으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룹의 총수로 지정된 마당에 출석을 안할 경우 국회 요구를 거부하는 것으로 비쳐져 마냥 거부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다음을 세웠던 이재웅 창업주는 이 전 의장의 동일인 지정에 대해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도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비판했다.
이재웅 창업주의 비판 자체를 놓고도 “오만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지만, 갈수록 기업의 규모나 형태가 다양해지는 추세에 기업인에 대한 일괄적인 동일인 지정 규제가 적절한지 여부는 계속 문제제기가 됐던 부분이다. 공정위 신영선 부위원장의 경우 지난해 6월 상호출자제한 대상기업 지정 자산 기준을 종전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올리는 법개정에 대해 설명하던 중 “자산 5조원의 카카오와 350조원의 삼성을 대기업으로 같이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차등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자산 5조원대의 동일인인 이 전 의장과 350조원대의 동일인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같은 동일인 규제를 받는 게 옳은지에 대한 의문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네이버가 이번 동일인 지정건을 놓고 “공정위의 기준이 그때그때 다르다”고 꼬집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상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일인으로 지정하고 규제하는 목적은 총수가 사적 이익을 위해 경영 전횡을 일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동일인으로 지정되면서 여러 개인적인 불편함이 발생할 순 있지만 규제나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경영활동을 했다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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