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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쉰다섯명과 인연 맺은 편지들… 손글씨의 향수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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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최정호 지음/열화당/6만5000원


편지/최정호 지음/열화당/6만5000원


소식을 전할 일이 있으면 편지보다는 이메일이 빠르고 편하다. 그러나 기계적인 글자체는 무색무취하고 감정 전달이 그다지 쉽지 않다. 정성스레 쓴 손글씨는 점차 사라져 간다. 한국언론학회 회장 등을 지낸 최정호(84) 전 울산대 석좌교수가 이런 세태를 아쉬워하며 반세기 동안 받아 간직해 온 편지들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당신은 내게 무한한 기쁨과 슬픔을 줍니다. 당신을 알게 된 걸 신에게 감사합니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 겸 수필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사노 요코(佐野洋子)가 보낸 편지다. 사노 요코가 쓴 에세이의 주인공 ‘미스터 최’가 최정호 명예교수란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2010년 사망한 사노는 일본에서 약 170권의 책을 남겨 정부 훈장을 받았으며, 한국에서도 20권 이상 번역됐다.

최 명예교수는 신간 ‘편지’에서 “서간문화의 선진국이었던 우리가 당대에 와서는 편지를 잘 쓰지도, 잘 간수하지도 않고 있다”면서 “안타까운 일이요, 부끄러운 일이다. 아쉬움이 이 책을 엮어내기로 한 동기”라고 했다.

최 명예교수가 수록한 편지 150통의 주인 55명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다. 의학자이자 선교사였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 박사도 들어있다. 스코필드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 서울대 영빈관에 머물면서 당시 서독 유학 중이던 최 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스코필드는 “지금 서울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갖가지 부패가 사라지고 있다. 나는 박정희 장군을 존경한다”고 적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언니 바르바나 도너(1896∼1983) 여사는 최 교수가 보낸 조문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 “한국인들이 이 전 대통령을 내몰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응로 화백은 1973년 보낸 편지에서 학생들 수업에 필요한 화선지가 필요하다며 지물상에서 화선지를 사서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연하장도 있다. 미술사학자 김원룡(1922∼1996) 교수는 1982년 연하장에 닭과 개 그림을 그려 보냈다.

저자는 “편지란 인연의 결과물인 동시에 기록 문학의 한 장르”라면서 “작가들 전집에 서한집이 한두 권씩 포함돼 있는 유럽과는 달리 편지를 보관하지 않고 소홀히 하는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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