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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소년범, 엄벌도 훈방도 답 안돼… 재범 막을 그룹홈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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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문가들, 소년법 폐지 주장 반박

“엄벌주의 범죄 예방효과 없어”

‘보호자 위탁' 교화에 한계

초기 불기소 관행도 범죄 키워

외국선 친권 정지하고 교육시켜

개인 1:1 맞춤형 처분도 필요

청소년회복센터 ‘전국1호' 창원

2014년 재범률 최저 “예산지원해 확산을”



부산 중학생 폭행 사건 등 흉포한 청소년 범죄가 잇따르면서 19살 미만 소년범에게 최대 형량을 제한하는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엄벌 위주의 대응이 범죄를 억제한다는 근거가 없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많은 소년범이 부모의 실질적인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호자 감호 위탁’ 위주로 안이하게 처분해온 관행을 버리고, ‘청소년 회복센터’ 등 대안시설 보호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소년범을 교화할 수 있도록 온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재판부가 부모에게 개입해야 소년범을 무조건 엄하게 처벌하면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소년범 형사정책의 근본 체계를 흔드는 감정적인 대처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엄벌주의가 범죄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소년범에 대한 대응체계에서 어떤 약점이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합리적인 대응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소년법 체계는 ‘보호처분’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보호자 감호위탁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 등 10가지 처분 가운데 40%가량은 ‘보호자 감호위탁’ 처분이었다.(2015년 법원행정처 <사법연감>) 가장 많은 소년범한테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처분’이 내려진다는 뜻이다.

문제는 부모들이 그 역할을 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외국의 경우 재판부가 (소년범의) 부모를 불러 친권 일부를 제한하고, 부모에게 ‘교육명령을 이수하라’고 강제한다. 그래서 부모까지 한 달 동안 교육받는다. 한 달 뒤 좋은 부모가 됐는지 확인하고 친권 제한을 풀어준다”고 말했다. 이승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원도 “부모가 같이 교육을 받고, (사법기관에서) 부모 교육에 개입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청소년 사건을 오래 다룬 지방검찰청의 한 부장검사는 “부모가 (소년범을 지도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가정환경이나 범죄 유형에 맞는 일대일 맞춤형 처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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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초기 법적 단죄 중요 비행 초기 검찰이 ‘기소유예·불기소’ 처분을 주로 내리는 관행 또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소년범들이 어떤 법적 단죄 절차도 겪지 않아 문제를 키운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범죄학 교수는 “소년범의 경우 초기에 빨리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 ‘훈방’ 등 경미한 처분을 대여섯번 받은 뒤에야 소년원에 가는데, 그 과정에서 비행 정도가 심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의 경우 경찰이 바로 재판부로 넘긴다. 재판부는 재량에 의해 수십개 강제적 보호처분을 결정한다. 아이들이 조기에 어떤 형태로든 사법적 처분의 경험을 갖는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경찰이 수사해서 검찰로 넘겨도 60% 정도 사건이 불기소 또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다. 어떤 강제처분도 받지 않은 아이들이 자기 행위의 심각성을 못 느끼다 보니 비행 정도가 점점 심각해진다”고 진단했다.

경찰이 내부 기준으로 ‘훈방’ 조처를 하는 관행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승현 연구원은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 대부분이 경찰서에서 몇 시간 교육받고 풀려나는 시스템인데, 몇 시간 교육만으로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제대로 된 교정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훈방 처분에 앞서 의례적으로 몇 시간 일러주는 방식이 아닌 지속적이고 강제적인 교정교육의 기회를 갖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질적 보호처분…‘회복센터’ 주목 소년범 교정과 관련해 경남 창원의 ‘청소년 회복센터’ 실험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청소년 회복센터는 부모 등 가족을 대신해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사법형 그룹홈이다. 법원에서 소년법상 1호 보호처분(‘보호자 감호위탁’)을 받은 아이들 중 일부 아이들이 이곳에서 돌봄을 받는다. 2010년 창원지방법원 관할 지역에 처음으로 설치됐다. 당시 창원지법 소년부를 맡은 천종호 현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가 제안했다. 법원 위탁을 받은 민간인이 운영하고, 법원은 운영비를 보조하는 구조다. 아이들은 센터의 도움 아래 학교에 다니거나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기술을 습득해 자립을 도모하기도 한다. 공예 치료, 독서 모임, 연극 치료 등의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청소년 회복센터를 만들어 소년범을 돌본 결과, 창원지법이 관할하는 소년범의 재범률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2015년 전국 19살 미만 소년범의 재범률이 12%를 넘어섰을 때, 창원지법에서 재판을 받은 소년범의 재범률은 8.51%에 그쳤다. 창원지법 관할 소년범 재범률은 2014년에도 전국 최저를 기록했다. 천 부장판사는 1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의지를 발휘해 비행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 전체가 나서서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며 “나쁜 습관을 고쳐주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소년 회복센터는 현재 경남 창원, 부산 등 전국 19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천 판사는 “청소년 회복센터에 예산이 지원되고, 전국 곳곳에 센터가 설립된다면 소년범의 재범을 막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수진 김양진 고한솔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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