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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매경데스크] 체험마케팅 전성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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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6월 닛케이가 주최한 국제포럼 행사 참석차 도쿄에 갔을 때 다이칸야마에 위치한 쓰타야서점에 들렀다. 2~3층짜리 작은 건물 3개 동(棟)이 모두 서점이었다. 책만 파는 게 아니라 주제가 비슷하면 잡지, 음반, 잡화, 가전 등도 함께 팔았다. 요리 서적 옆에는 그 책에 등장하는 식기와 조미료 등도 전시해놓았다. 심지어 그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까지도 갖춰놓았다. DVD음반도 그 자리에서 들어볼 수 있도록 했다.

2층의 한 벽면에는 한국 TV에서 방영된 인기 드라마와 중국의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담은 DVD도 진열돼 있었다. 서점 유리창 너머에는 정원이 있고 날갯짓하는 새도 보였다. 책을 읽다가 배가 고파지자 같은 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러 카레를 먹었다. 읽고 싶은 책을 고른 후 스타벅스 매장에 들고 가서 계속 읽었다. 시간에 쫓겨 읽지 못한 책 세 권을 구입해 그곳을 나섰다. 쓰타야는 서점의 개념을 '책을 파는 점포'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체험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상품이나 서비스만 팔던 시대는 지났다. 상품만 구입하려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최저가 검색을 해서 구매하면 끝이다. 책을 사려면 아마존 웹사이트에 접속해 몇 번의 클릭으로 주문하면 된다. 이제는 적절한 체험을 제공하지 않으면 상품이 팔리지 않는 시대다.

일찍부터 체험 마케팅의 중요성을 깨달은 기업이 사우스웨스트항공이다. 이 회사는 비행기 곳곳에 경험(experience)을 버무린 서비스를 숨겨놓는다. 고객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이벤트를 벌이거나 재미와 즐거움을 제공한다. 기내 승무원들이 경쾌한 노래를 부르면서 옆자리 승객들과 인사를 나누도록 유도하거나 폭소를 자아내는 행동을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탑승구 직원이 기내 수화물 수납을 돕고 조종사가 승객의 휠체어를 밀어줄 정도로 서로 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고객들도 자연스럽게 이 항공사에 협력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과거부터 소비자는 의(衣)-식(食)-주(住) 순으로 관련 상품을 구매했다.

불과 20년 전을 생각해보자. 추석이나 설 등의 명절 때는 새로운 옷을 사입었다. 자녀들에게도 새 옷을 사줬다. 특별한 날을 기념해 가족들이 모여 외식을 했다. 그 후에는 자신이 거주할 집을 꾸미는 일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가정 내 소품 등에 관심이 많아졌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많은 가정의 옷장과 신발장을 열어보면 입을 옷과 신발이 쌓여 있다. 과잉 영양 공급으로 이제는 단식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시대다. 이제 상당수 소비자들이 신상품을 사기보다는 새로운 뮤지컬 공연을 보거나 새로운 경험할 거리를 찾는다. 해외여행을 떠나고 색다른 체험을 위해 기꺼이 리스크를 감수할 생각도 있다. 가정 내 필수품으로 여겨지던 제품도 소유하지 않고 빌려서 사용한다. 정수기를 넘어서 침대나 가전제품 등도 빌려서 쓴다. 침대 렌탈 업체가 침대 전문회사의 매출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 그 증거다.

고객 접점이 많은 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큰 규모의 별마당서점을 내놓은 데 이어 경기도 고양시에 체험 마케팅에 초점을 맞춘 복합 공간인 스타필드 고양을 선보였다. 대형마트에는 '그로서란트(grocerant)' 마켓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는 그로서리(grocery)와 레스토랑(restaurant)의 합성어로 한곳에서 식재료를 구입해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정육 코너에서 쇠고기를 구입해 바로 스테이크를 굽고 해산물 코너에서 랍스타를 골라 즉석에서 먹을 수 있다. 롯데마트 서초점과 신세계의 PK마켓, GS수퍼마켓에서 도입했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소비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지 못하는 매장은 외면받을 운명에 처해 있다. 소비자는 매장에 들르면 습관적으로 현장에서 서비스를 체험하면서 동영상이나 사진을 찍어 즉시 SNS에 올린다. 음식의 맛이나 매장 분위기, 종업원들의 친절도를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생중계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소비자는 갈수록 차별화된 체험을 중시한다. 직접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평가하고 입소문을 낸다. 이제는 단순히 제품의 특징이나 제품이 주는 이익을 나열해서는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는다. 감각을 자극하고 잊지 못할 체험을 제공해야만 한다.

이 같은 세태 변화는 우리에게 숙제를 남겼다.

'우리 회사는 상품과 서비스 이외에 어떤 차별화된 체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가?'

'내가 고객들에게 새롭게 선물한 특별한 체험은 어떤 게 있을까?'

[김대영 유통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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