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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법조전문기자의 시각> 소년법 폐지하면 '캬라멜 훔쳐 감옥가는 초등생'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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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잇따른 청소년 범죄로 정치권에선 소년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은 살인 등 강력범죄의 경우 ‘징역 20년’으로 돼 있는 소년범 처벌 상한선을 25년으로 높이는 법개정안을 냈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미성년자의 나이를 만 14세 미만에서 두 살 내려 만 12세 미만으로 개정하자고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한 시민이 게시한 ‘청소년보호법(정확히는 소년법) 폐지’청원은 8일 현재 서명자가 24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법조계와 형사정책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법 폐지와 처벌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내자식의 작은 실수 감싸자는 게 소년법
만10세~만 19세 소년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아니면 일반 형사법정이 아닌 가정법원 소년재판부에서 재판을 받는다. 사안이 가벼울 경우엔 보호자 감호처분(1호), 사회봉사 명령(2호) 등의 처분이 나오고, 무거우면 아이들을 최장 2년까지 소년원에 보낸다(10호). 이른바 소년보호처분이다.
서울가정법원에서 소년사건을 담당했던 권양희 부장판사는 “소년법은 청소년이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작은 실수’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며 “소년법 개정 문제는 정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예컨대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장난삼아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차량에 소화기를 뿌렸다가 손괴 혐의로 입건된 사건이 있었고,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 셋이 아파트 놀이터에 누군가 벗어 놓은 점퍼에서 1000원을 꺼내 가 캬라멜을 사 먹은 사건을 재판했다”며 “소년법이 없다면 이런 사건을 모두 형사처벌해 아이들이 전과자가 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소년보호처분은 전과가 남지 않는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6년 소년 범죄는 8만7403건이다. 이중 절도가 28.8%로 제일 많고, 성범죄(강간 또는 추행)가 3.7%, 살인·강도·방화 등 ‘흉악범’은 0.5%수준이다. 흉악범 비율만 놓고 보면 2011년에는 1.1%였지만 2012년 0.8%, 2013년 0.7%로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법 폐지’보다 ‘세심한 법적용’을
현재 문제되는 사안은 이 같은 ‘실수’성격이 아니라 어른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잔인한 범죄들이다. 그렇더라도 처벌 수위를 높여 오래 가둬두는 게 답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범죄의 경우 소년보호처분 대신 일반 형사처벌을 받는다. 실형선고를 받으면 소년원이 아닌 일반 교도소에 간다. 소년원과 교도소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소년원은 교화(敎化)가 주 목적이고, 외부와 격리된 ‘학교’에 가깝지만 교도소는 범죄자를 사회와 분리수용하는 곳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소년범을 소년원이 아닌 교도소에 보내면 성인 범죄자들과 섞여 온갖 범죄를 배워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12년 소년원에 수감된 한 청소년이 가족으로부터 온 편지를 읽고 있다. /성형주기자


때문에 이들이 출소 후 저지를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다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년째 소년사건을 맡아 오고 있는 부산가정법원 천종호 부장판사는 “10호처분에 따른 소년원 수용 기간을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한다. 현재는 10호처분을 받아도 평균 1년 6개월이면 임시처분을 받고 나간다. 아이들을 교정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다. 반면 일본은 소년원 수용 기간에 제한이 없고, 수용기관이 아이들이 교화가 됐다고 판단할 때가지 수용할 수 있다.
이수정 교수도 “비행전력이 많은 아이들도 소년원 가는 데는 두려움을 갖는다”며 “현재의 10호 처분을 20호로 세분화해 소년원 송치 기간을 늘리고, 규율이 엄격한 소년원에 최소 2~3년을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소년원에 수용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천 판사도 “소년원 수가 적어서 송치기간을 늘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한다. 2016년 현재 총 정원 1250명인 전국 11개 소년원의 실제 수용인원은 6월 기준 1498명으로 20%를 초과한 상태다.
아이들을 바깥에 두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다. 이번에 부산과 강릉 등지에서 또래를 집단폭행한 가해자 중 상당수는 보호관찰 기간중이었다. 보호관찰(소년보호처분 4,5호)은 청소년을 사회 내에 두되 귀가시간 제한 등 조건을 붙여고 관찰관이 감독하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청소년 보호관찰 대상자의 재범률은 2016년 현재 12.3% 로 성인(5.6%)의 두 배가 넘는다. 보호관찰관 1명이 소년범 130명을 관리하는 열악한 여건도 한 원인이다.
재범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법원의 신속한 개입’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소년사건도 경찰에 접수되면 일반 사건과 마찬가지로 검찰로 송치돼 법원으로 온다. 이 과정을 대폭 단축해 가벼운 사건은 직접 경찰에서 법원으로 보내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수정 교수는 “소년사건 의 60%가 검찰에서 불기소되면서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이 아무 처분도 받지 않게 된다”며 “가벼운 사건은 경찰에서 직접 법원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루빨리 법정에 세워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다. 물론 경찰 수사권독립과 관련돼 있어 실현이 쉽지는 않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방안은 많은 예산이 소요되거나 기관간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에 비하면 ‘형량 올리기’나 ‘처벌 연령 확대’는 돈도 들지 않고 국민 법감정에도 부합한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만 9세가 살인을 저지르면 그때는 또 만 8세부터 처벌하자고 법을 바꿀 텐가”는 한 전문가의 일침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양은경 법조전문기자 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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