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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 (수)

아시아 다른 구석구석에선 어떤 현대미술이 펼쳐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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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아시아창작공간네트워크 전시 현장

아시아 19개국 33개 창작공간에서 온 현지 작가들의 낯설고 기발한 작업들



한겨레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의 문화창조원 복합2관에 차려진 ACC창작공간네트워크 전시 `아시아의 도시들' 현장. 원형 전시장 들머리에 일본 작가 우메자와 가즈키가 만든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들이 내걸려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의 미래상을 떠올리며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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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계에서 외진 구석인 아시아 주변부의 미술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양극화의 글로벌 시대에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까.

예향 광주의 도심에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 가면 국내 다른 미술관이나 화랑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들의 날 선 작업들을 눈으로 포식하게 된다. 올해로 7회째를 맞는 ACC창작공간네트워크 전시 ‘아시아의 도시들’이 그것이다.

지난달 31일부터 전당 내 문화창조원 복합2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 전시는 양극화와 빈부격차, 민족문제와 전쟁, 계급 갈등에 시달리는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의 현실을 도시 공간을 주된 배경으로 삼은 현지 작가들의 상상력과 관점으로 투영한다. 19개국 33개 창작공간의 추천작가 35명이 내놓은 출품작들이 철골로 짠 2층의 거대한 원형 건조물 곳곳의 방 안팎에 돌아가면서 설치된 얼개다. 여행하듯 각 나라 공동체 미술운동가들이나 대안공간의 신구작들을 망라해 볼 수 있다.

들머리 공간에서 처음 맞는 작품은 일본의 대안적 출판사 겐론이 추천한 작가 우메자와 가즈키의 웹 이미지 모자이크 연작 <망령의 힘>이다.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따온, 원본 출처를 알 수 없는 캐릭터, 텍스트, 사진, 아이콘 200여개를 짜깁기해 컬러프린트한 것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대한 불안한 의식의 풍경을 찢어지고 베어낸 듯한 이미지들을 통해 표출한다. 중국의 소장 작가 왕언라이는 전시장 철골 틈 사이로 수십개의 쓰레기비닐봉투를 도배하듯 설치해 팬으로 바람을 넣었다 뺐다 하는 기발한 설치작업을 통해 대량소비사회의 파국과 허망한 정서를 풀어내고 있다. 원형 전시장 옆에는 인도네시아 화가 마랸토의 스산한 목탄 회화를 볼 수 있는데, 자원 수탈로 점철된 이 나라의 역사적 풍경을 함축적으로 집약한 장엄하면서도 스산한 산야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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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불가촉천민 출신 작가 라주 파텔이 그린 수채화. 불가촉천민들의 삶과 일상을 발과 몸, 얼굴 등으로 표상하면서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드로잉과 수채화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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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는 또다른 초점은 인도의 사회문제를 다룬 참여미술 작업들이다. 요즘 세계 미술시장에서 부쩍 두각을 드러낸 인도 미술계에서 진보적인 공동체 활동을 해온 소장 작가들의 문제작들이 상당수 나왔다. 특히 뭄바이 근처의 소도시에서 현지 불가촉천민의 삶을 소재로 드로잉과 수채화를 그려온 라주 파텔의 회화들은 뿌리깊은 카스트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담하고 서정적인 필치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강렬한 울림을 준다. 카스트제도의 피해자들에 대한 인터뷰와 최근 인도에서 격화한 반카스트 투쟁의 현장들을 핍진한 영상으로 담은 인도 다큐작가, 기자들의 모임인 ‘달리트 카메라’의 충격적인 영상작업들도 주목해볼 만한 작업들이다.

아시아의 또다른 뇌관인 민족문제를 현대미술의 관점으로 접근한 작업들도 인상적인데, 소수민족 출신의 미얀마 망명 작가 양훼의 작업이 대표적이다.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비영리 예술공간 양훼 망명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 이미지를 조합해 언뜻 국기 같지만 실제로는 국기가 아닌 짝퉁 만국기를 내건 설치작업을 통해 소수민족을 억압해온 미얀마의 비극적 현실을 은유하고 있다.

‘아시아의 도시들’전은 유명 기획자가 진두지휘하는 대형 국제기획전의 관행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획됐다. 광주 대인시장에서 대안공간을 운영해온 조승기씨와 소장 큐레이터 이은하씨가 아시아 각국 대안공간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며 공동체 기획의 형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은하씨는 “준비 과정에서 포럼 등을 열며 아시아 전시공간의 다양한 기획자들과 전시 내용은 물론 작업교류의 방향성과 대안까지도 함께 고민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라며 “지속적인 소통과 논의의 장을 열어 아시아 대안미술가들의 대표적인 네트워크 창구를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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