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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ESC] 벚꽃 아이스크림과 풍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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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SC] 보통의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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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년 전, 회사를 그만뒀다. 충동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입사 후 내내 했던 생각이다. 회사 생활은 내게 맞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로 떠났다. 이것은 충동적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했냐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숙소를 잡고 열흘 정도 잠들었다 깨어났다를 반복하며 바다만 보았다. 때는 겨울이었지만 낮 기온이 영상 20도를 웃돌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지겨워져 차를 빌려 오키나와 전역을 떠돌았다. 가고 싶은 곳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길을 따라 한참을 운전하다 적당한 곳에 멈춰 밥을 먹고, 다시 또 길을 따라 운전을 계속했다.

어느 날, 조그만 항구에 차를 대고 정자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심술궂게 생긴 고양이가 내 쪽을 보며 앉아 있었다. ‘실업자 주제에 팔자 좋구나’ 하는 표정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내게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배가 불렀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하지만 배가 불렀거나, 세상이 만만해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바닥 없는 늪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버티다간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누가 죽이지는 않겠지만, 스스로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쳤다. 살기 위해서였다.

오래돼 보이는 육교를 지나 상가 거리로 향했다. 대부분은 문을 닫은 채였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이른 시간이기 때문일 수도, 사람들이 찾지 않는 비수기 때문일 수도, 쇠락해가는 시골 변두리 상가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일본어를 못했고, 이곳의 사정 역시 몰랐다. 내 앞의 인생만큼이나.

상가 변두리 가게 앞 벤치에 앉았다. 옆 벤치엔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오키나와의 명물 중 하나인 블루실. 원래는 오키나와 주둔 미군을 위한 군납 아이스크림 브랜드인데, 1963년부터 민간에도 공급돼 지금은 오키나와 전역에서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이런 작은 도시 변두리 상가에서도 판다. 마침 2월로, 오키나와의 벚꽃축제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그래서 그 기간 한정 ‘벚꽃 맛’ 블루실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맛을 골랐다. 벚꽃 맛이라니. 그것은 무슨 맛일까. 먹어보니 향긋한 가운데 달콤하고 시큼했다. 벚꽃을 먹어본 적이 없어 진짜 벚꽃 맛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맛은 좋았다.

그때, 납작한 모자에 배낭을 멘 할머니가 종종걸음으로 걸어왔다. 등에는 홀쭉한 남색 배낭을 멘 채였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림잡아 100살은 넘은 것 같았다. 할머니는 옆의 젊은 부부 앞에 멈춰 섰다. 아는 사이인가? 할머니는 가방을 내리더니 앞주머니를 열어 무언가를 꺼내 부부에게 건넸다. 풍선이었다. 부부는 할머니에게 “아리가토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하고 말했고, 할머니는 아이를 향해 “가와이네”(귀엽네) 하고 말했다. 그 말을 한 뒤 할머니는 다시 배낭을 멘 뒤 어딘가로 걸어갔다.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아이에게 풍선을 전해주러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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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내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문득 ‘저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상의 귀여운 아이들에게 풍선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싶지만, 아빠가 불어준 풍선을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아이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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