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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friday] 한국서만 통해요 "약속 깨서 미안, 부장님이 밥 같이 먹자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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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리와 오누키의 friday talk]

조선일보

처음 만난 날, 약속 장소 정하는 건 김 기자 몫이었습니다. '내 사전에 맛집 줄 서긴 없다'는 미맹(味盲) 김 기자는 음식 기자 조언 얻어 가까스로 서울 통의동의 한 이탈리아 식당을 약속 장소로 정했습니다. "네, 좋죠. 거기 맛있더라고요." 아뿔싸, 서울의 '새로 뜨는 맛'을 보여주려 했는데 이미 오누키 특파원의 개척지였네요. 오누키 특파원은 '이왕 시간 내 먹는 거 맛있게 먹고 싶다'는 미식가입니다. 이번 주제는 음식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만큼이나 다른 두 나라의 식(食)문화 이야기입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하하, 네. 그 질문 한국말 서툴 때 당황스러운 말이었어요. 왜 남이 밥 먹은 것까지 물어보나 싶었죠. 한참 뒤에야 '식사하셨어요'가 '안녕하세요' 같은 안부 인사란 걸 알았지만.

전쟁과 가난의 역사 때문인지 한국에서 '먹는다'는 행위는 '식(食)'을 넘어서 '생(生)'에 가까운 듯해요. '다 먹자고 하는 짓' '잘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 '먹는 게 남는 것'…. 일상 표현들만 봐도 느껴지지요? 먹는 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즐거워야 할 식사가 가끔 '일'이 돼 괴롭긴 하지만요.

한국에서 업무 미팅을 하다가 정오가 되면 자연스레 상대가 물어와요. "약속 없으면 식사 같이 하실까요?" 일본에선 미리 약속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없거든요.

정말 그렇네요. 미팅하다가도 점심 시간 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좀 뭐라도 먹고 할까요'란 얘기가 자연스레 나와요. '도시락 미팅' 하면 했지, 쫄쫄 굶으면서 일 얘기만 하는 건 한국 정서에선 예의가 아니죠.

저도 언젠가부터 취재 시간 잡을 때 점심을 염두에 두게 됐어요. 상대가 "오전 10시에 보자" 하면 '아, 점심 약속을 따로 잡아도 되겠군' 생각하고, "오전 11시에 만나자"고 하면 그 말 뒤에 '밥 같이 먹읍시다'란 말이 생략된 거라 짐작해요.

밥 약속의 함의(含意)까지 헤아리다니. 저희야 습관적으로 익힌 사회 언어지만(웃음). 반대로 일본에서 유학했던 친구는 첫날 점심 시간을 잊을 수가 없대요. 수업 끝나고 누구랑 먹을까 둘러보는 사이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혼자만 남았더래요. 삼삼오오 짝지어 먹던 한국 대학 시절 떠올렸다가 머쓱해졌다네요.

얼마 전 일본에 가서 취재원을 만났다 헤어지는데 낮 12시였어요. 그새 한국식에 익숙했는지 뭔가 허전해 머뭇거렸는데, 상대가 말하더군요 '데와(では·그럼…)'. 순간 깨달았죠. 아 여기, 일본이었지.

왠지 식사 시간 앞두고 딱 잘라 뒤돌아서면 정 없다 느끼는 게 한국 사람이죠. 오죽하면 '밥정(밥 먹으면서 쌓는 정)'이란 표현이 있을까요. 요즘 세대는 또 다르지만.

밥 약속 중요하다지만 이해 안 갈 때도 있어요. 가끔 친구들이 저녁 시간 직전에 전화해서 "저녁 약속 없으면 같이 먹을래?" 물어요. 그러자고 답했는데, 30분도 안 돼 다시 연락이 와요. "진짜 미안한데 우리 부장님이 갑자기 밥 같이 먹자고 하네"라면서 자기가 잡은 약속을 취소해요.

상사의 갑작스러운 식사 자리 호출이라, 단칼에 거절하기 쉽지 않죠. 식사가 사회 생활의 연장이란 생각 탓이겠죠.

그게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선약(先約)보다 약속 대상의 지위 고하(高下)가 더 중요한 사회적 분위기요.

요즘 한국에선 미식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어요. 맛집으로 소문난 일식집도 많은데 가봤어요?

여기 나온 일본인들 사이에 우스개가 있어요. '일식(日式)은 일식(日食)이 아니다.' 일본식이라 내건 집치고 제대로 된 데 없단 얘기죠. 가격은 턱없이 비싸고.

그럼 일본인들 자주 가는 알짜 일식집 하나만 알려주신다면?

종로에 있는 회전초밥집 ○○○○. 힌트는 여기까지.

김미리·'friday' 섹션 팀장

오누키 도모코·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

(※한국과 일본의 닮은꼴 워킹맘 기자)


[김미리·'friday' 섹션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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