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후 들어선 민주당 정권은 "데모로 해가 떠서 데모로 해가 진다"는 말을 들었다. 자유당 시대 데모는 1년에 50건 정도였다. 민주당 정부에선 열 달 동안 시위가 1000여 건 벌어졌다. 낡은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공로가 있다고 생각한 학생·시민들은 날마다 데모하고 정부에 뭔가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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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은 남북통일 협상 같은 문제부터 '하숙비 인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요구를 내걸었다. 경찰과 군인들도 데모를 벌였다.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대학생 데모대가 맞붙어 폭력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급기야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은 데모 좀 그만하라"고 시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민심에 빚을 진 정부는 데모대에 무력했다. 오히려 장면 총리가 대학생 대표들을 만나 정치 잘하라고 야단을 맞고 국방·외교 문제에 관한 훈수를 듣는 일도 있었다.
▶어제 청와대 옆 청운효자동 주민들이 "집회 시위 제발 그만!"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이 지역은 지난해 촛불 시위 이후 온갖 민원이 분출하는 데모의 온상처럼 됐다. 요즘도 한 달에 300건 정도 시위가 벌어진다고 한다. 주민들은 "소음과 대규모 행진, 천막 농성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지경"이라고 했다. 얼마 전 효자동 일대를 걷다가 시위대가 종로소방서 앞을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치는 걸 보았다. 소방대원들은 "소방차가 드나들어야 하니 좀 비켜달라"고 통사정하고 있었다. 이 일대는 국립 맹학교·농학교와 장애인 복지관이 있어 시위로 인한 혼잡으로 자칫 안전사고도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지난달 양심수석방위원회라는 단체는 이석기·한상균씨 석방을 요구하며 죄수복을 입고 시위했다. 그들은 "촛불이 없었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이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마치 '혁명이 진행 중'인 상황으로 보는 것 같다. 정부가 그들을 '촛불 혁명'의 우군(友軍)으로 보는 한 '시위 좀 그만하라'는 시위를 아무리 해도 시위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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