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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만물상] "데모 좀 그만 하라"는 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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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9월 11일 자 조선일보 사회면은 기상천외한 데모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M초등학교 6학년 6반 학생 24명이 담임선생을 규탄하는 데모를 했다는 것이다. 학생 둘이 싸움을 했는데 담임이 한쪽 편을 들었던 모양이다. 이를 부당하다 여긴 아이들이 반장을 중심으로 스크럼을 짜고 교무실과 교장실로 쳐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이해 6월 15일 영등포구 D초등학생 200여 명은 "잡부금이 너무 많아 학교 못 다니겠다"며 시위를 벌였다.

▶4·19혁명 후 들어선 민주당 정권은 "데모로 해가 떠서 데모로 해가 진다"는 말을 들었다. 자유당 시대 데모는 1년에 50건 정도였다. 민주당 정부에선 열 달 동안 시위가 1000여 건 벌어졌다. 낡은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공로가 있다고 생각한 학생·시민들은 날마다 데모하고 정부에 뭔가를 요구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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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은 남북통일 협상 같은 문제부터 '하숙비 인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요구를 내걸었다. 경찰과 군인들도 데모를 벌였다.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대학생 데모대가 맞붙어 폭력 사태에 이르기도 했다. 급기야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은 데모 좀 그만하라"고 시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민심에 빚을 진 정부는 데모대에 무력했다. 오히려 장면 총리가 대학생 대표들을 만나 정치 잘하라고 야단을 맞고 국방·외교 문제에 관한 훈수를 듣는 일도 있었다.

▶어제 청와대 옆 청운효자동 주민들이 "집회 시위 제발 그만!"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이 지역은 지난해 촛불 시위 이후 온갖 민원이 분출하는 데모의 온상처럼 됐다. 요즘도 한 달에 300건 정도 시위가 벌어진다고 한다. 주민들은 "소음과 대규모 행진, 천막 농성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지경"이라고 했다. 얼마 전 효자동 일대를 걷다가 시위대가 종로소방서 앞을 가득 메우고 구호를 외치는 걸 보았다. 소방대원들은 "소방차가 드나들어야 하니 좀 비켜달라"고 통사정하고 있었다. 이 일대는 국립 맹학교·농학교와 장애인 복지관이 있어 시위로 인한 혼잡으로 자칫 안전사고도 일어날 수 있는 곳이다.

▶지난달 양심수석방위원회라는 단체는 이석기·한상균씨 석방을 요구하며 죄수복을 입고 시위했다. 그들은 "촛불이 없었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이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마치 '혁명이 진행 중'인 상황으로 보는 것 같다. 정부가 그들을 '촛불 혁명'의 우군(友軍)으로 보는 한 '시위 좀 그만하라'는 시위를 아무리 해도 시위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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