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퍼포먼스를 최초로 선보인 국내 1세대 행위예술가 정강자 화백이 위암 투병 끝에 23일 새벽 별세했습니다.
대구 출신인 정강자는 1968년 5월30일 서울 종로구 종로1가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정찬승·강국진과 함께 '투명풍선과 누드'라는 해프닝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25세였던 정 화백의 알몸에 동료작가들이 투명풍선을 달고, 풍선을 터뜨린 뒤 정 화백이 퇴장하는 퍼포먼스였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미술계와 사회 전반에 걸친 부조리에서 벗어나 여성해방을 추구한 행위예술로 평가받았습니다.
고인은 2003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아주 심한 욕도 많이 들었다. 하여간 그해 한 신문에서 '발광상' 1위가 저, 2위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윤복희였다"면서 전위미술을 대하는 사회의 냉담했던 분위기를 전한 바 있습니다.
이듬해인 1969년 7월에는 전위예술가 김구림 등과 함께 흑백과 컬러가 교차하는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에도 퍼포먼스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구상적인 회화 작품을 주로 선보였습니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중남미를 비롯해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남태평양 등으로 스케치 여행을 떠난 그는 대자연의 생명력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고인은 2015년 위암 3기 선고를 받고서도 개인전을 마치고 수술을 받겠다며 의료진을 설득할 정도로 작품 활동에 큰 열정을 보여줬다고 유족은 전했습니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 서교동 대안공간 루프에서 1968년 당시의 세시봉 누드 퍼포먼스를 약 50년만에 재연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년 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회고전을 앞두고 있었으나, 투병 끝에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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