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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추미애·김부겸 증세론에 스타일 구긴 김동연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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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율 인상 없다” 공언해왔는데

여당·청와대 증세 추진에 난감

재정전략회의서 4시간반 침묵

정책 엇박자 국민 신뢰 떨어뜨려

전문가 “부총리 위상 지켜줘야”

중앙일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여당발 증세 논의 과정에서 김 부총리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김 부총리는 회의록에 한마디의 말을 남기지 않았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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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2일 차)에 참석했지만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진행된 3개 세션 (총 4시간30분)의 회의록을 확인하니 김 부총리의 발언 내용은 없었다”고 전했다.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세션에선 발언자가 몰려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발언 시간을 1분으로 제한해야 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발언 기회를 얻은 뒤 “경제수석이 정책실장 발언 신청도 자를 정도로 청와대가 자율적”이라고 농담해 참석자들을 웃게 했다.

국가 재정을 놓고 다루는 회의에서 정작 재정을 책임지는 경제부총리는 뒷전으로 물러난 모양새다. 더구나 ‘부자 증세’ 추진이 확정되면서 김 부총리는 난처한 입장이 됐다. 그동안 “세율 인상은 없다”고 공언해 왔는데 이게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다.

이런 분위기는 기재부에서도 엿보인다. 기재부는 다음달 초 발표할 세법개정안을 준비하면서 세율 인상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증세론을 치고 나오고 문재인 대통령이 증세를 ‘공식화’하면서 기재부는 그간 마련한 세법개정안의 틀을 다시 짜야 할 처지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 직후 “증세를 확정해야 하는 시기인데, 방향은 잡히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기재부에서 충분히 반영해 방안을 만들기 바란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여당발 증세 논의 과정에서 장 실장은 논의 를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김 부총리는 회의록에 한마디의 말을 남기지 않았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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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자 증세 결정 과정에서 경제 컨트롤타워라는 김 부총리는 소외됐다. 그러자 부총리의 위상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재완(전 기획재정부 장관)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교수는 “부총리의 입지가 좁아 보인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부터 새로 부활한 청와대 정책실과 기재부를 비롯한 경제부처 간 역할 분담이 불분명해 혼선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김 부총리의 인사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청와대 실세들에게 부총리가 휘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시선을 의식해 장하성 실장은 “경제 비전과 계획은 당연히 부총리가 이끌어 간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와 장 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1일 첫 회동을 한 자리에서다. 김 부총리가 경제 컨트롤타워임을 공식화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달랐다. 20일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김부겸 행자부 장관은 “(19일 발표된) 5개년 계획에서 재원 조달 방안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장관끼리 내부 논의는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김 부총리의 기존 원칙을 반박하는 셈이 됐다. 결과적으로 경제부총리의 리더십을 깎아내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정기획위가 두 달간 논의를 거쳐 향후 문재인 정부 정책의 청사진을 공식 발표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다른 얘기가 나오는 건 정부 스스로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가들은 부총리가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부총리와 국정기획위가 공식 발표한 사안을 여당이 곧바로 뒤집으면 정부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증세는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는 사안인 만큼 정부 내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치되 정제된 내용을 외부에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완 교수는 “경제부총리 제도가 있다는 건 그만큼 경제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뜻”이라며 “경제부총리의 위상을 정부나 정치권이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허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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