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최저임금 논의는 애초부터 경제 논리가 실종된 가운데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최저임금을 연평균 15.7%씩 올려 3년 만에 1만원을 만들겠다고 했다. 1만원이 되면 월급을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 액수가 커지는 현상이 적잖게 나타난다고 한다. 새 정부는 말이 되지 않는 이 일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노·사·공익위원들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심의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가 거수기 역할을 한 셈이 됐다. 한 자릿수 인상을 주장했던 사용자 측도 최종 표결 직전에 12.8% 인상안(7300원)을 냈다.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은 "노사 양측 모두 정부 의지를 반영한 안을 냈다고 보여진다"고 했다. 사용자 측이 백기 투항한 셈이다. 그마저 공익위원들이 노동계 측 손을 들어줘 15대 12로 노동계 안이 채택됐다. 급기야 어제 중소기업·소상공인 사용자위원 4명이 "정권의 거수기로 전락한 최저임금위원회는 해산돼야 한다"면서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최저임금 근로자의 85%가 중소·영세기업에서 일한다. 이 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내년에 15조2000억원으로 추산된다. 16.4% 인상안이 결정되자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소상공인연합회가 일제히 성명을 내고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재앙 수준"이라고 했다. 현재 중소기업의 42%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낸다. 상공인의 27%는 월 영업이익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최저임금 결정에서 영세·중소기업의 이런 열악한 상황은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놀라운 일은 연이어 벌어졌다. 어제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최근 5년간 최저임금 인상률(평균 7.4%)을 초과하는 인상분에 대해 정부가 재정으로 직접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정은 문 대통령이나 김 부총리가 낸 돈이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다. 경제 현실은 무시하고 최저임금을 높여놓고는 심한 부작용이 우려되니 국민 세금으로 개인기업 임금을 보전해주겠다고 한다. 선별적으로 지원한다는데도 4조원 넘는 예산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정권은 세금 몇조원 정도는 가볍게 여긴다. 대통령의 무리한 공약을 밀어붙일 때마다 그 뒷감당은 국민 세금에 떠넘긴다. 그것도 한 해에 끝날 일이 아니다. 나라 살림에 큰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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