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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성찰없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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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서

베트남 유학생, 직접 작성한 편지문 낭독

“한국, 반성한다면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어”



한겨레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한국과 베트남 역사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도 응옥 루옌(40)씨가 편지문을 낭독하고 있다. 최소연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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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반성하고 용서할 수 없을까요?”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던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베트남 유학생 도 응옥 루옌(40)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며 열린 이번 기자회견에서 루옌은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천천히 낭독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이 일본을 끊임없이 원망하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어떤 목적으로든 다른 나라에 가서 사람을 죽였으면 반성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일본정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아 나 역시 분노하곤 했습니다…한국 군인에 의해서 베트남의 많은 민간인이 생명을 잃었다는 것을 반성한다면,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루옌씨는 편지를 쓰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게 ‘나도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다. 나중에 베트남에 가서 한글과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때 (베트남 학살) 희생자들이 생각나 마음이 너무 아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한베평화재단, 아시아평화인권연대 등 50여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정의로운 대한민국,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성찰로부터’라는 이름의 기자회견에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한국 정부가 진상규명을 비롯해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문을 대표로 낭독한 베트남 참전군인 출신의 명진스님(72년 맹호부대 파병)은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한 이래 베트남은 ‘과거를 닫고 미래로 가자’는 입장을 견지하며 다양한 교류를 이어왔지만, 한-베수교 25년만에 처음으로 양 국가간 역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경제가 살아났다”고 발언하자, 베트남 외교부는 6일 뒤인 12일(현지시각) 공식 입장을 내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발언과 행동을 삼가 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베평화재단을 비롯한 단체들은 이에 대해 “과거 민주정부 시절, 식민지배와 독재정권 하에서 일어난 반민주적, 반인륜적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다양한 과거사위원회가 만들어졌다”며 “문재인 정부 역시 더 늦기 전에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래는 도 응옥 루옌의 편지 전문.



서로 반성하고 용서할 수 없을까?

도 응옥 루옌(Do Ngoc Luyen) 베트남 유학생

저는 90년대에 한국이 아시아의 용이라는 경제 뉴스를 자주 보았고, 그 관심을 키워 한국학과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데 용이 됐을까? 베트남은 왜 용이 되지 못했을까? 스스로 질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20년 가까이 한국어를 배우며, 많은 한국 사람을 만났습니다. 책을 통해 선조들의 이야기도 만났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큰 생각을 하고 과감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한국이 용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 지금도 한국은 베트남이 배워야 할 점이 많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이 일본을 끊임없이 원망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든 다른 나라에 가서 사람을 죽였으면 반성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일본 정부에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아서 저도 분노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가끔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가 베트남 사람인 저를 보고 자랑하듯 “난 베트남에 가서 참전했다”고 하거나, “베트남전 참전자회 관계자들이 베트남 전쟁 당시에 피해가 많은 지역에 가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다. 마을회관을 짓고 있는데, 나중에 거기서 한글과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을 때 왠지 마음이 찢기는 듯 아팠습니다.

전쟁 피해 지역에서 가서 한글과 태권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 위안부 할머니가 많이 사는 지역에 가서 일본어와 가라테를 가르친다는 것과 같은 의미 아닐까요.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그 역사로 인해 서로 불편을 주지 않을 수는 없을까요.

베트남의 역사를 살펴보면 용서라는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베트남은 현대에 와서 미국, 프랑스, 일본, 한국과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과거를 덮고 있습니다. 물론 잊을 수 없는 아픈 역사지만 계속 그 아픈 역사를 가지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어떤 자격으로 참전했는지 모르지만, 한국 군인에 의해서 베트남의 많은 민간인이 생명을 잃었다는 것을 반성한다면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잘못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국가 차원에서도 그렇습니다. 글로벌 시대, 국가 간에 앞으로 협력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자꾸만 과거를 갖고 감정싸움을 하면 좋지 않겠지요. 특히 지금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는 2세들도 많이 태어나고 있는데요, 우리 후손들에게 멋진 양국 관계를 보여 줄 수 없을까요?

서로 반성하고 용서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과거에 어느 나라가 더 잘했다 못했다보다는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위해서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면 안 될까요?

황금비 기자, 최소연 교육연수생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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