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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평범한 삶 그리는 4등 같은 배우면 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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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연이 주연이다】 영화 ‘대립군’ 골루타 역 박지환

“중학교 때부터 무서운 얼굴…악역 전문배우 맞아”

골루타 역 위해 변발, 25㎏짜리 무쇠솥 지고 연기

“배우는 마흔부터가 시작…신나고 재밌게 기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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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립군>의 신 스틸러 ‘골루타’ 역을 맡은 배우 박지환이 23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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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발에 구부정하게 굽은 허리, 비뚤어진 고개까지 마치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연상시키는 외모. 일본 편인지, 여진 편인지, 조선 편인지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행동거지. 잊을 만하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키맨의 역할까지…. 말 그대로 ‘미친 존재감’을 뽐내는 캐릭터랄까. 영화 <대립군>을 본 관객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이 영화의 신 스틸러 ‘골루타’ 이야기다. 하지만 이 독특한 배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선보여온 배우 박지환(37). 올해로 데뷔 18년차인 그를 23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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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립군>의 신 스틸러 ‘골루타’ 역을 맡은 배우 박지환.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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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너무 어색했는데, 다들 이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당분간 이 스타일을 유지할까 해요.” 박지환은 인터뷰 내내 대화가 끊길 때마다 자신의 민머리를 어루만졌다. 골루타 역을 위해 어깨까지 오던 단발머리를 망설임 없이 밀었던 터다. 머리 얘기에 유쾌한 웃음을 터뜨린 그가 한마디를 보탰다. “머리 때문에 당분간 영화 못 찍을 줄 알았는데, 더 못돼 보이는지 오히려 섭외가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대립군>에 이어 그는 올 하반기 개봉 예정인 <범죄도시>와 <1987>, 내년 개봉 예정인 <마약왕> 등을 촬영 중이라고 했다. 배역은 모두 악역이다.

“제가 좀 무섭게 생겼잖아요? 중학교 때부터 이 외모였어요. 담임 선생님이 늘 ‘지환아, 너는 좀 웃어. 네 속이 아무리 꽃 같다 한들 얼굴이 무서워 남들이 오해해’라고 하셨어요. 하하하.” 그는 자신을 ‘악역이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에서는 김명민의 코를 베어 가는 폭력배로, <검사외전>에서는 황정민이 감방에 들어가자마자 “영감님이 여긴 웬일이냐”며 시비를 거는 죄수로, <나의 독재자>에서는 설경구를 고문하는 고문팀장으로 출연했다. 너무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은 없어요. 악역도 수천, 수만 가지의 스펙트럼이 있고, 그 안에서 미묘한 차이를 찾아가는 것이 제 몫이죠. 아직 오지도 않은 상황을 걱정하며 그 감옥에 절 가두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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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수사>에 출연한 박지환.


지금은 악역 전문 배우지만, 어린 시절 그는 김수영의 시를 몹시 사랑하는 문학소년이었다.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을 만큼 독서에 심취했던 그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다양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스무살 때 진로 고민을 하며 강화도 마니산에 올라 3일을 있었죠. 그러다 얻은 답이 연극이었어요. 그길로 극단에 달려가 연기를 시작했죠. 하지만 남의 연기를 본뜨는 도제식 교육에 거부감이 심했어요. 연극을 그만두고 6개월 절에 가 있었는데, 한 선배가 영화를 권하더라고요. 그렇게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으로 영화를 시작했어요.”

첫 상업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짝패>였는데, 통편집을 당했다. 하지만 몇 년 뒤 <베를린>으로 류 감독을 다시 만났다. 그렇게 한 번 인연을 맺은 감독은 늘 다시 그를 찾는다. “오랫동안 연기를 했지만, 사실 연기가 뭔지 비로소 깨달은 건 <대호>를 찍으면서였어요. 흔히 ‘호흡’이라고 하잖아요. 연기는 카메라와 호흡을 맞추며 한 편의 춤을 추는 거구나 싶더라고요. 카메라가 돌아가면, 예상한 시나리오대로 되는 게 없어요. 감독의 의도와 나의 연기가 부딪히면서 처음 그린 그림이 얼룩지고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죠.” <대립군>의 골루타 역시 감독의 시나리오(변발)와 박지환의 아이디어(비뚜름한 고개와 굽은 허리)가 만나 만들어진 캐릭터란다.

조·단역을 오가며 산전수전을 겪고, 별의별 아르바이트를 다 경험한 박지환이지만 <대립군>만큼 고된 영화도 없었다. “제가 50㎏짜리 막걸리통 짊어지고 검단산 정상을 오르내리는 알바도 해봤거든요. 영화에서 골루타가 25㎏짜리 무쇠솥을 짊어지고 다녀요. 내내 짊어지고 촬영을 하려니 정말 죽을 뻔했죠. 아이고. 근데 영화엔 잠깐 나오더라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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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외전>에 출연한 박지환.


그는 단역이든 조연이든 주연이든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조금씩 성장하며 자신의 연기를 찾아 나갈 뿐 톱스타가 되고픈 꿈도,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며 스물다섯에 이미 내가 햄릿을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했어요. 관객이 ‘어떻게 저 얼굴이 햄릿이야?’라는 생각에 첫 10분을 보낸다고 상상해보세요. 작품 망하는 거죠. 하하하. 다만, 제게도 관객이 불러주는 ‘이름’이 있잖아요. <대립군>의 골루타처럼. 작품이 거듭될수록 그 이름은 계속 변할 거고, 제겐 그걸로 충분해요.” 그는 다가올 마흔을 설레게 기다린다고 했다. “한솥밥 먹고 있는 오달수 선배님을 뵐 때도 느끼는 거지만, 배우는 마흔이 시작인 것 같아요. 전 아직 3년 남았으니 그동안 더 열심히 성장해야죠. 재밌게, 그리고 신나게!”

목표를 물었다. 엉뚱하지만 심오한 대답을 내놨다. “4등 같은 배우요. 운동경기만 봐도 사람들은 늘 1등에만 관심이 있잖아요. 상도 1~3등만 받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인생은 주목받지 못하는 4등 같아요. 저는 그런 평범한 삶을 그리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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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립군>의 신 스틸러 ‘골루타’ 역을 맡은 배우 박지환이 23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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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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