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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할 일 없어진 사무라이들은 이렇게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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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제주&] 제주 무늬오징어 낚시

방파제 갯바위 어디나 포인트

연중 가능, 장비나 채비도 단출

고급 일식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회

여름 한치와는 또 다른 매력



한겨레

지난 14일 서귀포시 남원읍의 한 갯바위에서 송호균씨가 무늬오징어 낚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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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오징어다!”

묵직한 느낌에 낚싯대를 잡아채고 재빨리 릴을 감아들였다. 처음에는 미역이나 모자반이 걸린 줄 알았는데 ‘두둑, 두둑’ 하는 저항감이 느껴졌다. 분명히 생명체의 느낌이었다. 진짜 걸렸을까. 어느새 수면까지 떠오른 ‘에기’(새우 모양의 가짜 미끼를 뜻하는 일본어) 끝에 무늬오징어(흰오징어)가 걸려 있었다. 600g 정도 되어 보이는 씨알이었다.

두 아들의 육아가 직업이요, 집이 곧 직장인 일상에서 조금씩 짬을 내 바다에 나가곤 했다. 이날이 다섯번째 낚시였는데 뜻밖에 생애 첫 수를 봤다. 이전까지 낚시라고는 경험해본 적 없는 초보 낚시꾼은 서귀포시 남원읍의 한 갯바위에서 혼자 소리를 질러댔다.

난류성 어종인 무늬오징어는 언뜻 보면 갑오징어와 비슷하지만 몸통 속에 딱딱한 뼈가 없고, 커다란 지느러미가 두드러진다. ‘제트분사’라고 해서 순간 치고 나가는 힘이 대단한 무늬오징어 낚시는 손맛뿐 아니라 입맛까지도 보장한다. 육지에서는 일반 시장에서 보기 어렵고, 고급 일식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무늬오징어 회는 제주에서 제철을 맞은 여름 한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식감이 훨씬 풍부하고, 잘 숙성된 선어회(피와 내장을 없애고 저온에서 보관한 횟감으로 만든 생선회)와 같은 감칠맛이 폭발한다. 소주만 넣고 삶아낸 내장에서는 녹진한 바다 냄새가 강렬했다. 지금까지 본 두족류 먹거리 중에 단연 최고로 꼽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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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오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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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오징어는 지난해 많은 요리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면서 제주가 아닌 내륙에서도 명성을 얻고 있다. 육지에서는 남해권을 중심으로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잡힌다고 하는데, 수온이 따뜻한 편인 제주에서는 제철이 따로 없다. 연중 낚시를 할 수 있고, 가까운 방파제나 갯바위에 나가면 그곳이 바로 포인트가 되며, 장비나 채비도 단출한 편이다.

낚시라는 레포츠가 난생처음이라면, 대형 마트에서 세트로 파는 바다 루어(가짜 미끼) 장비와 낚시점 어디에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저가 에기를 사는 것도 좋다. 고등어회 한 접시 정도의 비용만 들이면 누구나 무늬오징어 낚시에 도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루어를 이용해 무늬오징어를 낚는 방식은 일본에서 수백년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전국시대가 끝난 뒤 할 일이 없어진 사무라이들이 에기(무늬오징어용 미끼)를 달아 어업이 아닌, 놀이로 오징어 낚시를 했다.

실제 무늬오징어를 낚는 데에는 기술이 조금 필요하다. 에기를 바닥까지 가라앉히고, 낚싯대를 재빨리 들어올리는 저킹(홱 움직임)으로 미끼인 가짜 새우를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물속에서 에기가 마치 살아 있는 새우처럼 튀어오른다. 한두번의 저킹 뒤에는 다시 에기를 가라앉히는 과정을 반복하면 이를 지켜보던 오징어가 에기를 먹이로 착각하고 달려들게 되는 것이다.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인터넷 동영상만을 참고했지만 정말로 무늬오징어를 낚아 올리지 않았던가.

접근이 쉬운 편이고, 발을 딛고 서는 곳의 지형이 위험하지 않으며, 7~8m 이상 수심이 나오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제주에서는 “설 수 있는 바닷가는 모두 오징어 포인트”라는 말이 돌 정도다. 제주 시내의 탑동 방파제가 유명하고, 서귀포시 쪽에서는 보목포구나 법환포구, 또는 새연교를 지나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새섬 등이 잘 알려진 무늬오징어 포인트다. 바닥에서 오징어 먹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비교적 잘 잡히는 곳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서귀포 칼 호텔 근처 갯바위에서 무늬오징어 낚시를 즐기곤 한다는 한동근(43)씨는 “썰물보다는 밀물 때 잘 잡히는 편이니 물때표를 참고하면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시간도 변수가 된다. 활성도가 떨어지는 한낮보다는 일출과 일몰 전후 한두 시간 동안 잘 잡힌다고 한다. 한 자리를 고집하는 것보다는 많이 움직이는 것을 권한다. 평소에는 찾을 일 없는 작은 방파제나 갯바위를 돌며 낚싯대를 던지는 동안 만나는 제주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은 덤이다. 체험 낚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낚싯배에 문의하면, 별다른 장비나 기술 없이도 선상낚시를 해볼 수도 있다.

송호균 레저를 사랑하는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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