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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조용헌 살롱] [1097] 가야 불교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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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가야는 백제보다도 더 패자이다 보니 오늘날 남은 기록이 거의 없다. 가야 불교의 구전 가운데 가장 압권은 지리산 칠불사(七佛寺)의 7왕자 이야기이다. 물론 '김해 김씨 대동보'라는 문중 족보에도 7왕자 이야기는 기록돼 있다. 어떻게 7왕자가 모두 도를 통하여 부처가 되었을까. 칠불사 터는 지리산 한복판에 있다. 김수로왕은 허황후(허황옥)와의 사이에 10남 2녀를 두었다고 전해진다. 장남은 왕위를 계승하였고, 둘째와 셋째 아들은 어머니 성(姓)을 이어받아 김해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일곱 아들이 모두 외삼촌인 보옥선사(寶玉禪師)를 따라서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다.

고고학자인 김병모 교수가 30년 넘게 허황후의 고향 땅이 어디인가를 추적하고 다니며 쓴 '허황옥루트―인도에서 가야까지'(2010)를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허황옥 일족은 원래 인도의 아요디아에서 살다가 쿠샨왕조의 침입을 받아 중국 사천성의 보주(普州)로 이주했고, 보주에서 살다가 탄압을 받고 그 일파가 배를 타고 가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보주에서 살던 허씨 성의 '허(許)'는 원래 '무사(巫師)'를 뜻하는 의미였다고 김병모 교수는 밝혔다. 허씨들이 원래 제사장 또는 브라만 계급이었다는 말이다. 그 허황옥이 출가한 아들 일곱 명을 보기 위하여 지리산 깊은 계곡을 따라서 칠불사에까지 왔고, 왕후가 머물던 자리가 오늘날 '대비촌'이라는 지명으로 전해진다.

일곱명 왕자 모두 부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손위의 두 왕자는 분발심을 내게 된다. '동생들은 부처가 되었다는데 우리는 뭐했나. 우리도 도를 닦자.' 두 명의 왕자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지리산에 들어왔는데, 이들이 도를 닦은 터가 오늘날 '허북대(許北臺)'로 전해진다. 칠불사 도응(道應) 주지스님에 의하면 허북대 위치는 칠불사 북쪽으로 10리쯤 되는 산봉우리이다. 지리산 반야봉의 맥이 토끼봉으로 왔고, 토끼봉의 주맥이 칠불사로 왔다면, 토끼봉의 지맥 하나가 내려가서 허북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칠불사는 다실(茶室)이 명당이다. 해발 700m 높이라서 바람이 친다. '업장이 녹는' 시원한 다실에서 차 한잔하였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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