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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기자의 시각] 半島국가 카타르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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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노석조 국제부 기자


카타르는 아라비아반도 동쪽에 손톱처럼 톡 튀어나온 작은 반도국가다. 사우디 영토 면적은 200만㎢로 1만㎢인 카타르의 200배다. 인구도 사우디는 3100만명으로 31만명(이주 노동자 포함 220만명)인 카타르보다 100배 많다. 카타르는 오랫동안 사우디의 속국 취급을 받았다. 이슬람 수니파인 카타르의 지배 계층과 지식인들은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를 존대했다.

우리는 카타르와 사우디의 최고 지도자를 '국왕'이라고 표기한다. 하지만 아랍어를 쓰는 두 나라는 자국 지도자 명칭을 각각 '아미르'(카타르), '말렉'(사우디)이라고 다르게 쓴다. 아미르는 추장이나 부족장에 가까운 의미이고, 말렉은 다수의 부족을 아우른 공동체의 지배자를 뜻한다. 한마디로 아미르와 말렉은 급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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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사우디는 카타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1995년 6월 27일 카타르에서 쿠데타가 발발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아미르 칼리파가 잠시 해외여행을 간 사이 그의 아들 하마드가 궁을 차지하고 아미르에 올랐다. 하마드는 천륜을 저버렸다는 비난에 굴하지 않고 국가 개조 프로젝트를 짜서 집행했다. 천연가스 개발 시설을 현대화하고 수출 시장을 개척했다. 교육 정책도 강화해 진주조개 캐고 정부 보조금 받으며 나태하게 살던 국민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다. 별 볼일 없던 카타르가 하마드의 리더십에 신흥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1995년 1만6000달러였던 1인당 GDP가 10여년 만에 9만5000달러를 돌파해 세계 최고봉에 올랐다. 2006년 아시안게임, 2012년 유엔 기후변화 콘퍼런스를 수도 도하에서 개최했다. 국가의 품격이 사우디를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국' 사우디는 움찔했다.

카타르의 독특한 외교 스타일도 사우디의 신경을 건드렸다. 대륙도 섬도 아닌 반도국가라 그랬던 것일까. 카타르는 수니파 사우디와 앙숙인 시아파 이란과 친하게 지내왔다. 심지어 아랍의 철천지원수인 이스라엘과도 경제 교류를 했다. 하마드는 예순하나이던 2013년 건강이 딱히 나쁜 것도 아닌데 "카타르는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아미르 자리를 서른셋의 아들 타밈에게 과감히 양위했다. 사우디를 포함해 절대 왕정의 아랍 걸프 국가에선 전례 없는 일이었다.

화가 쌓인 사우디는 결국 지난 5일 주변국들과 단체로 카타르에 단교(斷交)를 선언하고 육·해·공 통행을 차단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 사우디와 국경을 맞댄 카타르는 육로가 끊겨 졸지에 섬이 됐다.

사우디는 현재 카타르에 이란과 단교하라고 요구해 놓은 상태다. 압박이 심하지만 그렇다고 카타르가 이를 순순히 따르기도 어렵다. 카타르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15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란은 인구 8000만명의 군사·경제 강국인 데다 시아파 맹주이기 때문이다. 양대 강국 사이에 꽉 낀 카타르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카타르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노석조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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