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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임의진의 시골편지]아라비아의 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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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사막 중독. 또다시 사막에 와 있다. “광야 사막에서부터 레바논까지, 유프라테스 강줄기와 서해까지.” 성서 구절에 기록된 요르단 사막. 세례요한의 목이 떨어지고 예수가 유랑하다가 세례를 받은 땅.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보았던 광대한 사막.

오늘은 수도 암만의 외곽, 모래바람이 들이닥친 한적한 골목에 우두커니 서 있다. 코란을 독경하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 들려온다. 잠깐 눈을 감으며 그들의 신앙에도 예를 갖춘다. 보이는 곳마다 사막. 음식마다 가는 모래가 씹히고 양떼는 초원을 찾아 분주히 이동 중이다.

짐을 가득 실은 베두인의 차가 사막을 건너기도 한다. 행여 모래 웅덩이에 빠지면 자동차 바퀴의 공기를 빼야 한다. 사막에선 아집, 교만을 버려야 살 수 있다. 허장성세, 외형을 부풀리는 일에 열중하는 현대인들. 한 움큼씩 바람을 빼라는 사막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골마을에서 낙타를 한 마리 빌렸다. 힘센 수낙타는 나를 태우고 모래둔덕을 가뿐히 넘어갔다. 사람에게 어깃장 부리고 소홀히 다루는 낙타에겐 엄청난 무게의 짐짝을 싣게 만든단다. 유순하고 순종적인 낙타에게만 사람을 태울 안장을 씌운다. 아무 낙타나 사람과 호흡하며 사막을 건너는 게 아니다. 사람도 물론이다. 자기 생각만 앞세우고 후회도 뭣도 없는, 드세고 사나운 이들과는 인생을 같이할 수 없음이렷다.

사막 여행자는 낙타 젖을 짜서 먹고 낙타 똥을 그러모아 불을 피운다. 길을 잃고 헤맬 때면 낙타를 잡아먹기도 하고 낙타 털가죽으로 추위를 피한다. 낙타는 사막 여행자의 모든 준비물이다. 낙타와 나는 사막을 돌다가 오아시스 마을로 돌아왔다. 샘이 있는 오아시스 시골마을엔 새들과 도마뱀, 단봉낙타와 쌍봉낙타, 사륜구동 자동차, 목마른 여행자들도 다 같이 머무른다.

로렌스처럼 베두인 복장을 해보고 유목민의 빵 쿱즈와 까흐와(커피)를 마신다. 슈크란, 슈크란(고마워요). 수없이 슈크란을 입에 달며 모랫길을 걷는 날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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