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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문화와 삶]탈서울·탈입시의 대중음악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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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잊고 있던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취임 일성, “문화예술 지원하되 간섭 않는 원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그 말 한마디를 얼마나 기다려왔단 말인가. 이 말은 DJ정부 때 확립되어 참여정부 때까지 이어진 표어였다. 이명박 시절에는 지원하되 간섭도 했다. 박근혜 일당은 지원보다 간섭이 많았다. 아니, 지원은 없고 간섭만 있었다 해도 허무맹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참여정부 이후 대중음악 지원 정책은 음반 제작과 신인 발굴, 해외 공연이라는 세 가지 축으로 흘러왔다. 아직 디지털 음원이 음반을 완전히 대체하기 전에는 음반 제작비를 지원했다. 그 후 신인 발굴 및 지원 프로그램이 생겼으며 최근에는 해외 페스티벌 및 쇼케이스에 참가하는 국내 음악가의 경비를 지원하는 정책이 생겼다. 근 10년 가까이 지속된 흐름이다. 장점도 있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성과도 있었지만 한계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사이 음악 시장의 지형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가 음악 시장의 주된 소비자가 됐다. 그들이 철들 무렵, 즉 가장 예민하게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무렵은 아이돌이 TV와 인터넷을 완전히 점령했을 때였다. 음악잡지는커녕 라디오의 시대도 끝난 지 오래다. 수동적으로 음악을 듣는 대다수는 그전 세대에 비해 오히려 다채로운 음악적인 경험을 하기 힘들었다. 음악을 하고 싶은 친구들 역시 그전 세대와는 달리 부모의 박해를 받지 않았다. 대신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해서 입시를 준비하면 됐다. 어렵사리 실용음악과에 진학해도 교수님의 가르침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이론에 얼마나 정합되는지를 학점으로 평가받게 됐다. 주변에서 들리는 음악만 듣는 수동적인 계층이나, 음악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은 계층이나 그전보다 견고한 상자에 갇히게 된 게 지난 10년간의 흐름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사이 인디 음악의 중심지라 여겨졌던 홍대 앞은 명동과 다를 바 없는 상업지구가 됐고, 난무하는 음악 페스티벌들은 거기서 거기인 출연진으로 정체성 없는 ‘여가 산업’의 일부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정책이 의미가 있을까? 음원 제작의 리스크는 그전에 비할 바 없이 줄어들었다. 신인 발굴 오디션에서 1등을 해봤자 상금과 보도자료에 한 줄 쓸 수 있는 경력만 있을 뿐, 대중적 파급력은 전무하다. 해외 페스티벌에 참가해도 ‘좋은 추억과 영감’ 정도가 남을 뿐, 실질적 비즈니스 기회는 힘들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선 ‘지역 밀착형 정책’이다. 페스티벌을 비롯한 한국의 모든 공연은 중앙 집중이다. 장소를 하나 잡으려고 해도 얼마나 서울에서 가까운지가 최우선 고려 대상이다. 당장의 수익을 기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품’을 진짜 ‘문화’로 바꾸기 위해서 아예 고립된 지역에서 공연자와 관람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작은 페스티벌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영국의 글래스턴베리를 비롯한 해외 유명 페스티벌들의 뿌리도 그랬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축제의 유니폼이 꼭 개량한복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는 ‘생활음악 정책’이다. 2016년 기준 한국의 대학에 총 51개의 실용음악과가 개설돼 있다. 2006년 대비 2배가 넘는다. 해마다 그만큼의 음악 전공자가 쏟아져 나오지만 대부분은 백수가 되거나 학원에서 입시생을 가르치는 처지가 된다. 클래식이나 국악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초·중등교육에 연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돌봄교사나 방과후수업 등 입시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영역에 생활음악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악기를 배워 친구들이랑 밴드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비트 메이킹을 배워 랩을 잘하는 친구와 힙합팀을 결성할 수도 있다. 수학여행에서 디제잉을 할 수도 있다.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성인 이후에나 시도할 수 있는 음악적 경험들을 청소년기에 한다면, 음악을 수용하는 환경도 자연스럽게 넓어질 수밖에 없다. 결과보다는 뿌리에 집중하는 정책이야말로 한국 음악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큰 줄기가 될 것이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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