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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노트북을 열며] 옥자, USB, 동네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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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후남 문화부 차장


엊그제 여러 신문에 새로운 영화광고 하나가 일제히 실렸다. ‘깐-느 영화제부터 쏟아진 뜨거운 갈채!’ ‘팬들을 위한 특별 써-비스!’ 등 문구부터 과거 신문에 자주 실리던 영화광고를 일부러 흉내 낸 광고다. 하단에는 예전 신문광고처럼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전국 상영관 이름을 빼곡히 적어 놓았다. 아이러니는 이것이 봉준호 감독의 최신작 ‘옥자’의 광고란 점이다.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영화,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술인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전 세계 동시 공개하는 새로운 유통 방식으로 대형 극장 체인의 반발 등 큰 이슈가 된 영화다. 이런 ‘옥자’가 국내 영화팬들의 화제에서 한동안 잊혔던 도심 극장에 대한 관심, 복고풍 영화광고까지 다시 불러낸 건 여러모로 재미있는 현상이다.

개인적 견해로는 온라인 스트리밍이 하루아침에 극장을 사라지게 할 것 같진 않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옥자’의 경쟁부문 진출을 두고 프랑스 극장들이 반발했던 일이 이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알고 보니 프랑스는 극장 개봉 이후 장장 36개월이 지나야 온라인 유통이 가능한 법적 규제가 존재하는 나라다. 콘텐트 직접 투자에 뛰어든 다른 IT기업이 다들 넷플릭스의 방식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경쟁사 아마존의 경우 먼저 극장에서 상영하고 일정 기간 뒤 온라인에 선보이는 통상적 방식을 거친다. TV와 달리 영화라는 매체가 초기부터 큰 스크린, 즉 극장 관람을 전제로 발전해 온 점도 극장 문화 옹호론에 힘을 싣는다.

‘옥자’를 둘러싼 논란은 신기술의 수용 자체보다 이에 기반한 유통이 극장과 각종 부가시장으로 이어지는 기존 수익모델과 충돌하기 때문에 더욱 뜨거워진 듯 보인다. 지드래곤의 새 앨범 ‘권지용’을 둘러싼 논란은 이런 점에서 좀 다른 것 같다. 이 앨범은 빈 USB와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일련번호를 판매해 음악과 영상 등까지 직접 내려받게 하는 패키지다. 음악이 미리 담기지 않은 USB를 차트 집계에서 ‘음반’으로 인정하느냐의 문제가 있긴 해도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부딪히는 건 아니다.

위력적인 새 기술은 종종 착시를 부른다. 지나친 환호, 지나친 공포가 교차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동안 신기술에 적응 못해 사라져간 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반대로 반짝했다 사라진 기술도 한둘은 아니다. 시장은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도 한다. 현재의 전자책이 한 예다. 세계적으로 전자책은 성장의 정체기에 접어들어 종이책과 공존하고 있다.

지난주 막을 내린 서울국제도서전은 전국 특색 있는 동네책방을 초청해 호평을 받았다. 최근 동네책방이 다시 각광받는 데는 취향을 겨냥한 큐레이션의 강점만 아니라 온라인을 포함해 도서 할인율을 제한한 정책도 자리한다. ‘옥자’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유통이 제기하는 다양한 정책적·산업적 이슈를 한꺼번에 풀어놓았다. ‘옥자’ 덕분에 이를 가까이서 체감하게 됐다. 고마운 일이지만 유통 방식에 대한 논란이 작품에 대한 비평을 압도하는 상황은 좀 안쓰럽다.

이후남 문화부 차장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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