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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판사들 “사법행정 개혁 민주적 요구…대법원장 수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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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스스로 뽑은 대표들 모여 토론·결정

사법 행정권 남용 직접 문제제기

“대법원장도 동등한 입장서 논의를”



20일 법원 안팎에서는 전날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와 관련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실현된 첫 법관회의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달 법관회의를 수용하며 “법관들의 의견을 취합하겠다”고 밝힌 만큼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대한 직접 조사권과 책임자 문책을 요구한 법관회의 결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법관회의는 대법관 구성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던 2003년 회의와 신영철 당시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이 드러난 2009년에 이어 전국의 법관들이 모인 세 번째 회의였다. 하지만 토론 방식이나 주체, 결정 내용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관회의에 참석했던 한 판사는 “과거에는 법원행정처가 주도해서 의견을 듣고 알아서 처리했지만 이번엔 처음으로 판사들 스스로 뽑은 대표가 모여 안건을 정하고 논의해 결정까지 했다”면서 “참석자들이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토론했고 큰 이견 없이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됐다”고 전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는 우려를 표명하고 재발방지를 잘하자는 추상적인 결론만 내렸다”고 소개한 뒤 “판사들이 직접 사법행정에 참여하겠다며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사법부 차원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성창익 사법위원장(변호사)도 “사법행정권이 남용되면 법관들이 사법행정권자의 눈치를 보고 자기통제를 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면서 “법관들 스스로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사법행정 개혁의 발단이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법원 내부에선 이번 법관회의 상설화 여부에도 주목을 하고 있다. 이번에 판사들이 요구한 것처럼 대법원 규칙으로 법관회의가 상설화되면, 대법원장의 성향에 따른 일방적 입장이 아닌 판사들의 다양한 의견이 사법행정에 녹아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또 다른 지방법원의 부장판사는 “대법원장 권력이 비대해지고 법원행정처가 관료화되면서 각자 동등한 헌법기관인 판사들 사이에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자유로운 토론이 오갔던 법관회의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앞으로 법관회의가 어떤 권한을 가질지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법관회의가 일선 판사들의 요구를 양 대법원장이 직접 수용해 열린 만큼, 양 대법원장이 회의에서 결의된 내용을 거부하기는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법관회의에 참석한 한 판사는 “법관회의 내용을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방청한 만큼 분위기가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다. 판사들의 결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도 “대법원장 입장에서는 손발이 잘리는 아픔이겠지만 사법행정권 남용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대로 일하고 있는 상태가 비정상적”이라며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은 형사고발이 돼 있는데 법원이 먼저 나서 해결하지 않으면 되레 사법부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선 판사들이 국민의 사법불신을 해결하자며 나선 것인 만큼, 국민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은 대법원장도 (판사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사법개혁 방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경 현소은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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