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5 (화)

서울국제도서전 흥행이 블랙리스트 때문이라고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인터뷰]서울국제도서전 주역 주일우·김홍민·강성민 대표

역대 최대 관람객 든 서울국제도서전

블랙리스트 사태로 문체부는 예산지원만

출판인 중심으로 도서전 준비 주도

독립서점 초청·굿즈·사인회 등

기존 틀 벗어난 기획으로 관객 매료



한겨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실무를 맡은 주일우 이음출판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이 역대 최다 관람객 수치를 경신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도서 반값 할인 등을 앞세워 관람객을 모으곤 했던 서울국제도서전은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동력을 급격히 상실했다. 지난해엔 문학동네 같은 대형 출판사를 포함해 많은 출판사가 불참했고, 그 빈자리를 지방자치단체, 외서수입상 등이 채우면서 독자들은 ‘볼 것 없는 잔치’에 등을 돌렸다. 정가제 시행 전인 2014년 도서전에는 13만명이 찾았지만 시행 뒤인 2015년엔 10만명으로 참가자가 급감했다.

하지만 14~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3회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지난해 방문객 10만3214명의 두 배인 20만2297명이 찾았다. 역대 최대 숫자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적인 규모의 파리도서전 관람객 수와 맞먹는다. 17일 토요일 하루만 5만명이 넘게 모여 코엑스 쪽에서 이날 오후 관람객 입장을 제한해야겠다고 주최 쪽에 제안할 정도였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이 2월 말 당선된 뒤 두달간 준비해온 것으론 놀라운 결과였다.

도서전 기획과 실무를 맡은 주일우 이음출판 대표(대한출판문화협회 상무이사),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를 2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도서전이 할인행사 없이도 부진을 딛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첫 번째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주 대표는 “지난해엔 기자간담회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행사 전반을 주도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 문제가 터지고, 장관도 공석 상태가 되니 문체부가 한발 뒤로 빠졌다”고 말했다. 관에서는 예산(4억원)만 지원하고 출판인들이 도서전 준비를 주도하자 이전에는 시도해보지 못했던 파격적인 아이디어들이 그대로 실행됐다. 독특한 성격의 작은 서점 20곳을 초대해 행사장 한가운데에 배치했고, ‘상담 후 책 처방’으로 운영되는 ‘사적인 서점’의 아이디어를 특별기획으로 확대했다. 김 대표는 “워크룸 출판사의 김형진 대표가 디자인을 맡았다. 포스터부터 책을 앞세우는 기존의 틀에 박힌 디자인이 아니라, 요조·정유정·유시민을 앞세워 만들어 우리도 깜짝 놀랐다. 김형진 대표가 ‘디자인을 하며 간섭을 받지 않은 점이 제일 좋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도서전에 등을 돌렸던 출판사들을 다시 돌려세운 것도 도서전 부흥의 핵심 요인이었다. 지난해엔 출판사 80곳만 참여했지만, 올해는 출판사 160곳에 서점도 20곳이 참여했다. 부스 비용이 부담되는 작은 출판사 50곳에는 참가비용을 받지 않았다. 대형 출판사엔 출판인들이 직접 찾아가 참여를 이끌어냈다. 주 대표는 “출판사와 서점들이 도서전에 참여한다고 자발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하니, 그동안 ‘이 책을 만든 출판사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하던 독자들과 각 서점의 단골들이 도서전을 찾아줬다”고 말했다.

한겨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실무를 맡은 주일우 이음출판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마포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도서전을 ‘도떼기시장’이 아닌, 책과 노는 ‘놀이터’로 만들려 한 점도 주효했다. 참여한 출판사들한테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책 딱 7종만 들고 오도록 했다. 대신 출판사와 서점들은 기발한 굿즈(사은품)와 행사로 독자들을 즐겁게 했다. 허밍버드 출판사에선 버튼을 누르면 책 속 한 구절이 적힌 종이가 컵에 담겨 나오는 ‘카피 자판기’를 들고 나왔다. 일산 버티고서점에선 책방에서 팔던 생맥주를 가져왔다. 김훈, 김탁환 등 유명 작가들은 자신이 책을 낸 출판사 부스에서 독자와 만나 사인회를 열고, 직접 책을 권해주기도 하는 등 독자들에게 한발 더 다가갔다. 주 대표는 “먼저 참가한 관람객들이 여기서 구입한 책뿐만 아니라 ‘득템’한 굿즈, 재미있는 경험 등을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올리면서 입소문을 탔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가 개막식에 참석해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온 점도 도서전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번 행사에서 책 할인을 해주지 않아도 책에 대한 사랑으로 눈이 빛나는 독자들을 만난 것은 그 자체로 출판인들에겐 위로이자 희망이었다. 조성웅 유유출판사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도서전에서 봤던 독자들을 잊지 말자. 이 독자들을 떠올리면서 책을 만들면 힘이 좀 덜 들 것 같다”고 썼다.

이전 도서전에선 책 판매량이나 서로 확인하던 출판사 대표들이 이젠 ‘내년 도서전에서 이런 걸 시도해보자’며 아이디어를 쏟아낼 정도로 달라졌다. 김 대표는 “출판사들이 ‘유명 작가들의 신작을 도서전에서 먼저 공개하고 도서전이 끝날 때까지 시중에 내놓지 않으면 어떨까’, ‘내년엔 야간개장도 해보자’는 등의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만화책 출판사들도 내년엔 참가할 수 있도록 공을 들일 예정이다. 프로듀서와 설치작가들의 공연이나 작품 설치 등 다양한 협업도 벌일 생각이다. 주 대표는 “출판사들이 많이 오면 무조건 흥한다. 내년엔 출판사 300곳 참여가 목표다. 대관 규모도 더 늘릴 것”이라며 “올해는 두달밖에 준비를 못 했지만 내년 행사는 지금부터 1년간 준비할 거다. 기대해도 좋다”고 힘줘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 페이스북] [카카오톡] [위코노미] [정치BAR]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