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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특목고 없앤다고 하는데, 특목고 진학용 동아리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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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이]
교원 64명 학교에 164개 동아리 생겨나기도
학생·교사 2~3개 동아리 활동·지도도 허다해
특목고 학생생활기록부용 '스펙쌓기'로 변질
2년 전 학교당 50.5개에서 62개로 급증 추세


매일경제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하라고 해서."

서울 소재 한 중학교 2학년인 박 모군(14)은 평소 관심도 없었던 '화학 실험 동아리'에 얼떨결에 가입했다. 이 동아리는 박군의 같은 반 친구가 학기 초에 만들었다. 박군의 어머니는 "동아리를 만든 학생의 엄마가 대치동 스타일"이라며 "특목고 진학을 위해 만들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또 "최소 2개 학년 학생이 있어야 한다는 동아리 조직 요건 때문에 1학년 학생들을 급조해 이름만 올려놨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의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의 자사고·특목고 폐지 압박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서울·수도권 중학교에는 특목고 스펙 쌓기용 '동아리 열풍'이 불고 있다. 학생 한 명이 2~3개 동아리에 가입하고 교내에 수십 개 동아리가 난립하면서 교사들도 여러 개 동아리 지도교사를 맡는 등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관심 분야를 탐구하도록 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결국 특목고 진학에 유리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변질됐다는 비판이 크다.

19일 서울 강남 학원가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D중학교의 경우 5월 현재 교원 수는 64명에 불과하지만 164개의 동아리가 운영 중이다. 교원 1명당 평균 3개 꼴로 동아리 지도를 맡고 있는 셈이다. 전체 교사가 모두 동아리 지도를 맡는 건 아니어서 일부 교사는 훨씬 더 많은 동아리의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 이 학교 전교생은 898명. 학생 1명이 1개의 동아리에 가입한다고 가정하면 1개 동아리당 평균 학생 숫자는 불과 5명 안팎이다. 이 학교 한 학생은 "인기 있는 동아리엔 수십 명이 몰리지만 5~6명 정도만 모인 동아리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강남구 소재 G중학교 관계자는 "동아리 분야별로 담당 교사를 지정하기 때문에 5개 이상의 동아리를 맡아야 하는 교사도 있다"고 말했다.

중학교에 동아리 열풍이 불어닥친 것은 특목고 진학 때 중요한 평가 요소인 '학생 생활기록부' 때문이다. 대부분의 특목고가 지원 학생들에게 동아리 활동 내역을 기입하게 하고 평가 지표로 삼는다. 각종 대회 입상 실적이나 어학시험 점수 기재 시 감점 요인이기 때문에 비교과 영역에서 동아리 활동은 다른 학생들과의 '차별화'에 중요한 요소다.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 공약으로 '평등'과 '공정'을 주장하며 특목고·자사고 폐지를 약속했지만,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정책 방향이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특목고 진학용 '스펙쌓기'를 위해 동아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목고 진학용 동아리'는 상당 부분 정형화되어 있다. 사설 특목고 입시 상담소 등에서는 입시설명회 등을 열어 학부모들에게 지원하는 학교에 따라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이 유리한지 상담해주고 있다. 대치동의 모 입시전략연구소 소장은 "요즘 영재학교에 갈 학생들은 과학동아리는 필수로 다 한다"며 "주도적으로 결과물을 냈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는 과학 프로젝트 동아리가 좋다"고 추천했다. 또 "창의성과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음악동아리도 해야 한다"며 "혼자 하는 것보단 협연을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동아리가 협동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 학생이 복수의 동아리를 만들거나 가입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평소 관심 없던 주제도 '특목고 진학에 유리하다'면 개의치 않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학교알리미'에 정보가 공시된 서울지역 380여 개 중학교의 운영 동아리 수는 학교당 2014년 평균 50.5개에서 2015년 59.8개, 2016년 62개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교과 공부 외 다양한 활동을 하며 자신만의 '꿈'을 키우던 학생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기 위한 정책이 오히려 학부모와 학생, 현직 교사들에게 부담만 준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공동 관심사에 대해 주도적으로 동아리를 만들고 활동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며 "일부 문제가 있다면 본래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일선 학교에서 더 철저한 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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