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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정조 때 유행한 '책거리', 해외 알리는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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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거리 병풍'으로 미국 순회전 여는 정병모 경주대 교수]

民畵에 빠져 세계에 우리그림 소개, 책거리 접한 외국인 반응 뜨거워

"공감이 가야 세계화 시킬 수 있어… 책거리야말로 가장 글로벌한 장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저는 이 말에 반대해요.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 아이템이라야 다른 나라에 소개했을 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죠. 이번 미국 순회전을 통해 책거리 병풍이야말로 가장 글로벌한 장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정병모(58) 경주대 문화재학과(한국회화사) 교수는 스스로 '책거리 전도사'라고 했다. 지금 미국에선 그가 기획한 책거리 순회전이 돌고 있다. 전시 제목은 '한국 채색 병풍에 나타난 소유의 힘과 즐거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현대화랑 후원으로 김성림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와 함께 기획해 궁중 책거리 병풍과 민화 책거리 등 3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9~12월 뉴욕 스토니브룩대 찰스왕센터를 시작으로, 두 번째 캔자스대 스펜서미술관 전시가 지난 11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 세 번째 전시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미술관에서 8월 5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린다.

"관람객 반응이 뜨거워요. 한국 조선시대엔 수묵화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채색이 화려한 그림이 있는 줄 몰랐다고, 유럽에서 시작한 서재 그림이 한국적 스타일로 정착된 걸 보고 흥미로워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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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모 교수는 “유럽에서 시작한 서재 그림이 한국적 스타일로 정착한 것이 바로 책거리”라며 “가장 글로벌한 장르”라고 했다.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책거리 병풍 앞에 선 정 교수. /예술의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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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거리란 책을 비롯해 도자기·문방구 등 여러 기물을 그린 그림이다. 원조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개인 서재인 스투디올로(studiolo). 정 교수는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영국·프랑스, 청나라를 거쳐 조선에 왔지만 한국적 그림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호평 속에 열린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문자도(文字圖)·책거리'전이 미국 순회전의 계기가 됐다. 정 교수는 "미국 박물관 8곳에 이메일을 보냈는데 6곳에서 답이 왔고, 그중 3곳을 골라 최종 결정했다"고 했다. 캔자스대에선 전시 개막에 앞서 '화려한 채색화:조선시대 책거리 병풍'이란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미국 내 한국미술사학의 권위자인 부르글린트 융만 UCLA 교수는 "중국과 교류를 통해 습득한 서양화 기법과 정물화의 사조가 한국인의 취향과 관심에 맞게 적용된 그림이 책거리"라고 했고, 조이 켄세스 다트머스대 교수는 "조선시대 책거리의 기원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서재 그림이고, 이 서재 그림은 유럽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품 및 희귀 동식물의 수집과 전시 취미를 보여주는 박물관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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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스토니브룩대 찰스왕센터에서 열린 책거리 전시장 모습. /정병모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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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를 전공한 정 교수는 2001년부터 민화에 빠져 해외 박물관을 오가며 우리 그림을 소개하는 전도사가 됐다. 미국 UCLA, 영국 런던대, 중국 하남대 등을 돌며 민화 강연과 전시회를 열었고, 외국 대학 도서관에 책거리와 까치호랑이 등 현대 민화를 기증하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는 지난 2008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미와 학문(Beauty and Learning)'이란 제목으로 열린 책거리 특별전을 보고 '책거리의 세계화'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책거리 열풍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 때 시작됐어요. 왕이 책거리를 좋아하니까 고관대작이 앞다퉈 집에 들이면서 책거리가 시중에 대유행했죠. 임금부터 백성까지 좋아하고, 궁중 화원부터 이름 없는 민화가들까지 그린 주제가 바로 책거리입니다." 그는 "동서양을 잇는 역동적 문화의 흐름 속에서 조선 땅에 꽃피운 책거리가 이번 미국 순회전을 통해 세계에서 가치를 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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