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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간편식의 진화]③ '저녁에 주문해도 다음날 새벽이면 집앞에'...스타트업이 이끄는 배송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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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에 사는 맞벌이 부부 최모ᐧ이모씨는 주말마다 ‘신선’ 가정간편식으로 식사한다. 간편식 전문 배송 업체를 통해 양념불고기, 문어숙회, 조기구이, 오징어볶음, 연근조림 등 반찬을 매주 금요일 새벽에 배송받아 주말 식사를 해결한다.

최씨 부부가 주문하는 간편식은 스티로폼 상자에 여러 개의 얼음팩과 함께 포장돼 배송된다. 갓 만들어진 반찬은 최씨 부부의 집 앞에 배송될 때까지 1~8도의 냉온에서 보관된다. 고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양념이 된 채로 포장돼 있고, 깨끗이 손질된 상추, 마늘, 버섯, 파, 양파 같은 채소는 비닐팩에 담겨 있다. 냄비에 물을 붓고 재료를 다같이 넣어 끓이면 한끼의 불고기 요리가 바로 완성된다.

최모씨는 “결혼한지 1년 동안 메뉴별로 유명한 간편식 브랜드를 거의 다 먹어봤을 정도”라며 “요즘 파는 간편식은 인스턴트식품 뿐 아니라 신선식품도 많아 건강 걱정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신선하고 채소나 육류 상태가 좋아 간편식 배송을 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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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프레시 제공



‘배송 혁신’이 가정간편식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오늘날 가정간편식은 봉지 카레, 컵에 담긴 덮밥, 냉동 밥 같은 인스턴트 식품만을 뜻하지 않는다. 무농약 채소를 활용한 반찬, 화학 조미료 대신 천연조미료를 넣은 국ᐧ 찌개ᐧ탕은 물론 ‘밀키트(meal-kitᐧ바로 조리할 수 있게 전처리한 식재료)’ 같은 신선식품으로 확대됐다.

이처럼 가정간편식의 대상이 확대된 것은 식품업체들의 조리 및 포장 기술의 발전도 한몫했지만 신선식품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배송 시스템을 혁신한 국내 스타트업들의 공도 크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선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됐지만, 반찬, 국ᐧ탕ᐧ찌개 같은 신선식품은 온라인 쇼핑으로 사지 않는 품목이었다. 방부제가 많이 든 인스턴트 식품은 온라인으로 주문해도 상관없지만, 그 외 신선식품만큼은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인식이었다. 이런 인식을 바꿔놓은 대표적인 업체가 배민프레시, 헬로네이처, 마켓컬리 등 스타트업이다.

⬥ 배송시간 개념 바꾸고 온라인 음식 주문 인식 바꾼 스타트업

배달 스타트업 우아한형제는 2014년 국내 처음으로 반찬을 새벽에 배송하는 ‘배민프레시’를 도입해 배송시간에 대한 개념을 바꿔놨다. 배민프레시는 전날 밤 10시 이전에 신선 식품을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배송시장에서 가장 까다로운 품목은 음식이다. 포장 상태도 좋아야 하고 유통과정에서 상하지 않도록 보관도 잘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소비자에게 새벽에 반찬을 배달해 준다’는 것 자체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존 유통ᐧ물류업체들이 뛰어들기에는 큰 이익이 나지 않는 시장이었다.

이런 틈새를 노린 것이 배민프레시다. 우아한형제는 1인 가구와 맞벌이 가정 증가로 간편식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전날 오후에 만든 반찬이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소비자 집 앞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새벽시간을 활용했다. 품목별로 보관 온도를 달리할 수 있는 냉장, 냉동 창고를 갖추고 우유 배달처럼 새벽마다 신선한 반찬을 배송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이 회사는 수십여개의 간편식 생산업체와 계약을 맺고, 소비자에게 수백가지의 반찬 등 신선 간편식을 판매 중이다.

배민프레시는 새벽배송을 전담하는 자체 인력을 통해 수도권, 서울 지역에서 트럭 60여대를 운영 중이다. 배민프레시의 회원수는 35만명(6월 기준)으로, 작년 6월 10만명에서 1년 만에 250%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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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네이처 제공



2012년 세워진 스타트업 헬로네이처는 전국 수백개가 넘는 생산농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직거래 플랫폼을 만들었다. 소비자가 홈페이지에서 농산물을 주문하면, 주문 정보가 산지의 농가에 바로 전달돼 당일 수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헬로네이처 직원들이 일일이 농가를 찾아, 농산물의 재배 과정, 작황에 대한 검증까지 마쳐, 소비자들이 홈페이지에서 주문하는 식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2015년부터 경기 광주시에 직배송 물류센터를 설립하고 산지 제철 식품을 새벽 시간대에 직배송하고 있다. 현재 헬로네이처는 야채, 채소, 수산물 등 식재료 뿐 아니라 찌개, 탕, 반찬 같은 신선간편식도 판매 중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요즘 나오는 간편식은 인스턴트와 신선식품, 농ᐧ축산물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며 “간편식의 대상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지정시간 맞춰 자동으로 ‘배송 지도’ 계산...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기업들도 간편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반찬 전문 기업인 ‘더반찬’을 인수한 동원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동원은 참치, 햄 통조림과 소시지 같은 육가공 제품에 주력하는 기업이지만, 더반찬을 통해 반찬 사업에도 진출했다. 올 5월에는 서울 금천구에 더반찬 생산 공장도 세웠다. 주요 소비자들이 밀집한 수도권 배송시간을 줄이고, ‘오늘 만든 반찬은 오늘 배송한다’는 당일 배송을 체계화하기 위해서다.

유통, 물류 기업들도 성장하는 간편식 시장 트렌드를 쫓아가기 위해 배송에 투자 중이다. CJ대한통운은 이달 초 택배기업으론 처음으로 가정간편식 시장을 노리고 새벽 배송 시장에 진출했다. 낮시간 택배 사업과 별도로 새벽배송 전담 조직을 꾸렸으며 간편식만 따로 모으는 물류센터도 구축했다.

CJ대한통운은 체계적이고 전국적인 물류시스템을 차별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송장이나 배송 추적 시스템이 미흡한 스타트업들과는 달리 CJ대한통운은 전국 택배망을 갖추고 있는데다 배송 추적 같은 기반 시스템이 체계화돼 있어 소비자가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간편식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간편식 시장은 물론 간편식 배송시장도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새벽배송 대신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대에 효율적으로 배송할 수 있는 기술에 투자했다. 최적의 배송 지도를 자동으로 계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배송 시간과 거리를 줄였고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에 배달하는 ‘맞춤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해당 동네의 지리에 익숙한 직원이 “A아파트 1동, 2동을 들른 후 뒷문으로 나가 B아파트 1동에 가세요”라고 일일이 배송 지도를 짜주었다. 정확한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의 ‘감’에 의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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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제공



이마트는 2014년 전용 물류 시스템인 ECMS를 개발, 물류센터 자동화를 구축한 덕분에 소비자가 배송시간을 지정하는 맞춤형 식품 배송이 가능해졌다. 이마트 온라인몰을 통해 식료품을 주문하면 배송요청 시간을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선택할 수 있다. 소비자가 주문을 마치면, 배송요청 시간과 목적지가 배송관리 시스템에 전송되고 자동으로 최적의 루트가 계산돼 택배기사의 내비게이션(티맵)에 뜬다.

이마트는 간편식 뿐 아니라 모든 식료품을 배송하고 있는데, 배송 기술이 좋아지면서 신선식품 배송이 늘었다. 이마트에 따르면 온라인 주문 중 신선식품 매출 비중은 30%를 넘는다. 오프라인 매장 전체 매출 중 신선식품 판매 비중인 22%를 앞선다. 이마트의 간편식 브랜드인 ‘피코크’의 1~5월 매출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35% 증가했다.

박정현 기자(jen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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