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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종교와 음식] (13) 정통·이단 갈등에 ‘금단의 열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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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와 사과

경향신문

성경 창세기에 가장 먼저 나오는 먹거리 이름이 선악과다.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했다. 성경 어디를 봐도 선악과를 다른 과일 이름으로 지칭하지는 않았다.

영어 성경에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기독교 사상을 근간으로 한 서양에선 오랫동안 선악과를 사과로 생각했다. 남성의 결후를 일컫는 말이 ‘아담의 사과’(Adam’s Apple)인 것처럼 말이다.

중세 기독교 문화가 유럽을 지배하는 동안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됐고 17세기 발표한 밀턴의 <실낙원>에서는 선악과를 사과로 명시했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 역시 선악과를 사과처럼 그렸다. 오랫동안 사과가 금단의 열매로 오해를 받아왔던 셈이다.

선악과가 사과로 해석된 것은 로마 가톨릭에 의해서다. 사과 껍질의 붉은 색은 유혹적이고, 새콤달콤한 이중적인 맛은 뱀의 유혹과 낙원에서의 추방을 의미한다. 또 사과를 세로로 잘랐을 때 보이는 심 부분이 여성의 몸을 암시하고, 가로로 잘랐을 때 나타나는 별 모양은 악마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과에 이런 의미와 상징들을 부여했을까. 미국의 음식연구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스튜어트 리 앨런은 저서 <악마의 정원에서>를 통해 로마 가톨릭의 패권유지를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이탈리아 북부 위쪽 지역에는 켈트족이 살았다. 로마 가톨릭교도와 달리 켈트족은 자신들의 고유신앙인 드루이드교에 기독교를 받아들여 켈트기독교를 만들어냈다. 자연히 로마 가톨릭과 켈트기독교의 대립이 시작됐고 5세기 후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켈트기독교를 이교라 선언한 로마 가톨릭이 사과에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남부 유럽에서는 포도가 많이 났고 이를 빚어 만든 포도주는 로마 가톨릭에서 영적 상징으로 성스럽게 여겨졌다. 반면 켈트족이 살던 지역엔 사과가 많이 났다. 이들에게 사과는 지혜의 정수이자 성스러운 과일이었으며 종교의식에도 사과주를 썼다. 이들은 천국을 아발론(Avalon), 즉 사과의 섬으로 불렀는데 이 말은 켈트어 사과(abal)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사과에 얽혀 있는 신화와 정서는 오랜 시간 로마 가톨릭에 의해 훼손되면서 정욕이나 성적유혹을 상징하는 의미로 퍼지게 됐다. 그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서왕 이야기다. 이탈리아 음식문화칼럼니스트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는 <맛의 천재>라는 책에서 “5세기에 쓰인 원전에서 마법사 멀린의 지혜는 ‘달콤한 사과’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신부 제프리가 쓴 12세기 버전에서 멀린은 ‘여성들만의 사악한 쾌락으로 가득한’ 사과를 맛본 뒤 ‘미쳐서 침을 흘리는’ 인물로 등장한다”고 썼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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