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군역 대신하는 천민들
선조 대신 임시조정 이끈 광해
함께 난관 돌파하며 얻는 힘
영화 <대립군> 중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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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의주로 피란을 가면서 세자인 광해군(여진구)에게 종묘사직을 받들라고 명한다. 이로써 조선의 조정은 둘로 나뉘고, 광해는 아버지를 대신해 임시조정인 ‘분조’(分朝)를 이끌게 된다. 이 무렵 험준한 국경을 지키는 건 정규군이 아니라 ‘대립군’(代立軍)이다. 역사에 실존하는 대립군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는 이들로, 대부분 천민이었다.
<대립군>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대립군의 존재를 처음으로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의병을 모아 왜군과 싸우려는 광해 일행은 평안도 강계로 향한다. 행렬을 무사히 호위하면 정규군으로 신분 상승시켜 준다는 제안에 토우(이정재), 곡수(김무열), 조승(박원상) 등 10여명의 천민은 팔자를 고쳐보고자 대립군으로 나선다. 쫓아오는 왜군, 험난한 환경에 맞서나가는 광해와 대립군의 험난한 여정을 영화는 시종 따라간다.
임금을 대신해 전쟁에 나설 책임을 떠안은 광해는 초반부에 나약한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백성과 함께 난관을 돌파해가는 과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한다. 전쟁터에서 생존법을 익힌 대립군 수장 토우는 광해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된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가마에서 내려와 백성들과 보리밥을 나눠 먹고 백성들을 위해 춤을 추고 활을 드는 광해의 진정성이었다. 이 과정으로 영화는 지도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지도자의 자질은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정윤철 감독은 지난 22일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광해라는 소년과 대립군이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서 만나 진정한 리더란 무엇인지, 나 자신으로 사는 게 무엇인지를 각기 깨우쳐 가는 이야기”라며 “가장 밑바닥에 있는 대립군, 즉 백성이 결국 왕을 만들어낸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광해라는 지도자의 리더십을 그렸던 <광해, 왕이 된 남자>나 이순신 장군을 조명한 <명량>과 비교할 때 이 영화는 위기상황에서 나라를 지킨 것은 이름 없는 민초들이었음을 부각시킨다. 대립군이라는 역사 속 무명의 인물들을 스크린으로 소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정 감독은 “정규군이 되고 싶었던 대립군에게서 비정규·계약직 노동자의 모습이 보였다. 500년 전과 현실이 맞닿아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촛불정국을 지나온 지금 지도자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영화는 묻는다. 31일 개봉.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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