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감독 ‘고려 아리랑:천산의 디바’
중앙아시아 최고의 고려인 민족극장 ‘고려극장’에서 활동했던 두 디바, 방타마라와 이함덕은 그동안 역사의 페이지 속에 숨겨져 있던 인물이다. 김소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는 이들을 찾아내 80여년 만에 세상에 소개한다.
스탈린에 의한 ‘강제이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고려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베리아 벌판으로, 콜호즈(소련의 집단농장)로 직접 찾아다니며 공연을 했던 방타미라와 이함덕 등의 삶은 그 자체로 가슴 먹먹한 감동을 전한다.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는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벌판을 무대 삼아 동포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한 고려극장의 활동과 디바, 방타마라의 삶을 전한다. 시네마달 제공 |
‘모두가 존경하는 고려극장 최고의 배우’ 이함덕(1914~2002) . 시네마달 제공 |
“우리 배우들을 마치 하느님처럼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금 회상해 보면 순회공연단이 오는 날은 큰 명절을 맞는 듯했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던 동족들에게 이들의 공연이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가수라는 직업은 소명을 갖고 떠돌이 생활을 사랑해야만 할 수 있었어요.”
1932년 창립된 고려극장은 처음 원동(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창단했으나 1937년 강제이주 이후 현재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 자리 잡고 있다. 극장에는 이주의 역사와 중앙아시아 곳곳을 유랑, 순회공연한 경험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다른 민족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얻어 카자흐스탄에서 유일하게 국립극장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
‘아리랑가무단’은 1970년대 초 고려극장이 조직한 순회극단으로, 소비에트 전역을 돌아다니며 장구춤, 부채춤과 같은 전통 연희에서 현대 가극까지 다양한 장르를 공연했다. 고려말로 된 가요에서부터 러시아어 가곡까지 소화하며 소비에트 내 다양한 민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1989년 9월 방한해 서울올림픽 1주년 기념행사장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미모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방타마라(1943~ )는 오페라단에서 활동하던 중 ‘고려극장’에 캐스팅되어 ‘아리랑 가무단’을 대표하는 ‘디바’로 활동했다. 깊은 음색, 풍부한 성량과 표현력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음악세계를 선보여 두터운 팬층을 형성했다.
‘모두가 존경하는 고려극장 최고의 배우’ ‘100여 가지의 배역을 소화한 무대의 여왕’ ‘고려인 디아스포라 최초의 카자흐스탄 인민배우’ 등 다양한 칭호를 지녔던 이함덕(1914~2002)은 고려극장의 첫 작품 ‘춘향전’의 첫 번째 여주인공으로 무대에 선 후 20여년 동안 ‘춘향’으로 활동하면서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이함덕의 회고록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강제이주당하는 과정에서 고려인 4만명이 죽었어요. 초원에 실려온 이들은 땅굴을 파 집을 짓고 생존했죠. 우리는 집집마다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전등도 없는 벌판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어린이들과 노인들을 잃은 사람들은 공연이 끝나면 울면서 우리를 찾아와 악수하고는 고마움을 전했어요.”
‘재일동포’나 ‘재미교포’에 비하면 ‘고려인’은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다. 사전적 정의로는 ‘러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 국가에 거주하면서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민족 동포’다. 강제 이주정책에 의해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그루지야) 등으로 흩어진 ‘고려인 1세대’를 시작으로, 4세까지 아픈 역사가 지속되고 있다.
소련 붕괴 후 새로운 노동시장을 찾아 한국으로 들어온 고려인 동포는 4만명에 이르지만 ‘재외동포법’상 고려인 부모, 조부모까지만 ‘동포’로 인정, 자녀세대인 4세대들은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만 18세가 되면 강제출국해야 하는 등 한국사회에서의 정착 또한 쉽지 않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국민위원회’ 등이 발족, ‘고려인 특별법’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사회적 관심은 첫걸음 수준이다.
김 감독은 “중앙아시아의 유목문화와 소련의 연방문화 등으로 세계주의와 코스모폴리타니즘을 겪으면서도 고려인들은 고려극장이나 고려신문 등을 통해 우리말을 지켜왔다”며 “문화·역사적으로 두터운 층위를 가진 이들의 세계를 왜곡 없이 전해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중앙아시아를 떠돌아다니며 살아낸 삶, 그들이 부르는 ‘고려 아리랑’은 한국인들이 익히 알던 아리랑과는 전혀 다른 유랑의 소리다”는 이영주 DMZ국제다큐영화제 프로그래머의 평처럼, 영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우리의 문화유산을 발굴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을 만하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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