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이사회가 최대주주를 견제하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과 독립성 정도를 나타내는 '이사회 유효성' 지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내부 통제 시스템인 이사회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의 이사회 유효성 관련 점수는 10점 만점에 3.02점을 받아 조사 대상인 OECD 33개국(이탈리아·칠레 제외)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이는 OECD 평균(5.96점)에 크게 못 미치는 점수다. 일본과 미국은 각각 5.28점과 6.33점을 기록해 25위와 15위에 이름을 올렸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25일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가진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IMD에서 제시한 이사회 유효성 지표는 이사회의 견제능력 등을 종합해 수치화한 것"이라며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10~201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이사회에 올린 안건 2만7575건 중 이사회가 영향력을 행사해 안건이 부결되거나 보류·조건부 가결된 안건은 95건으로 전체의 0.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상희 연구위원은 "(전체 안건 수가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165개 기업을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 이사회가 영향력을 미친 안건은 고작 4건에 불과했다"며 "지난 4년간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와 내부거래위원회에서 영향력이 행사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지적했다.
사외이사의 장기재직 비율이 높은 점도 이사회 독립성을 훼손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30대 그룹에서 재직연수가 6년 이상인 사외이사 비중은 25.1%를 기록했다. 사외이사의 장기재직 현황 탓에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 지배구조의 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법적 규제보다는 기업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잘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날 대토론회에 참석한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기업의 자발적인 개선 노력과 함께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지침을 뜻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결합되면 지배구조 개선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 연구위원도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와 이행을 유도하는 것이 지배구조 개선에 효과적인 방안"이라며 "상법 개정도 부분적으로 필요하겠지만 기업이 자율적이고 실효적인 지배구조 개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업계 안팎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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