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제 9단, 또 알파고에 ‘완패’…“1대1로 못 이긴다” 의견 봇물
프로기사 5명이 토론하며 알파고와 대결하는 ‘상담기’에 관심
커제 9단이 1국에 이어 2국도 알파고에 패배했다. 대국 내용을 뜯어 본 전문가들은 “커제의 완패”라고 말한다. 구글 딥마인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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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계 최강’ 중국의 커제 9단이 지난 23일과 25일 열린 3번기 중 두 차례의 대국에서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무기력 하게 패했습니다.
결과는 1국 ‘1집 반’, 2국 ‘불계’ 패. 겉으로 볼 때 격차는 크지 않아 보이지만, 대국 내용을 뜯어 본 전문가들은 “커제의 완패”라고 말합니다. 커제 9단이 준비한 전략은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알파고의 수들은 인간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멀리 내다보는 듯했습니다. 알파고에게서는 실수도, 미세한 버그조차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인간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1대1로는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는 “2점 ‘접바둑(고수를 상대로 미리 착점한 뒤 두는 바둑)’으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그래서일까요. 관심은 오는 26일 중국 프로기사 5명이 단체로 알파고와 겨루는 대국 ‘상담기’에 쏠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집단지성과 인공지능의 첫 공식 대결입니다. 상담기라는 생소한 룰의 대국은 어떤 형식으로 펼쳐질까요? 그리고 상담기에서는 인간이 인공지능에 맞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 완패 당한 인류…집단지성으로 알파고에 도전
커제 9단과 대국을 펼치고 있는 알파고는 ‘알파고 2.0’으로 불립니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CEO)에 따르면, 알파고는 더 이상 인간의 기보를 참조하지 않고 스스로 학습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의 첫번째 ‘세기의 대결’에서 완승(4승1패)을 거둔 알파고보다 월등히 향상된 실력을 갖춘 버전입니다.
알파고 2.0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1월까지 한국 인터넷 바둑 사이트 <타이잼> 등에서 ‘매지스터(magister)’와 ‘마스터(master)’라는 아이디로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한·중·일 초일류 기사들을 상대로 60연승을 기록해 전세계 바둑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세돌 9단이 거둔 소중한 1승이 알파고를 상대로 한 인간의 마지막 승리일 수도 있다는 예상이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지난해 3월14일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5번기 4국에서 180수 만에 불계승을 거둔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활짝 웃고 있다. 오른쪽은 알파고가 화면에 띄운 패배 인정 메시지. “그만하겠다”(AlphaGo resigns)는 내용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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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사들을 상대로 인공지능이 우위를 점한 뒤부터 바둑팬들 사이에서는 “색다른 룰(규칙)로 인공지능을 상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여럿이 모여 토론하고 두는 대국’이나 ‘시간 제약 없는 대국’ 등이 거론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실 커제 9단과 알파고의 대결보다도 바둑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결은 상담기였습니다. 이번 상담기를 위해 스웨 9단, 천야오예 9단, 미위팅 9단, 탕웨이싱 9단, 저우루이양 9단 등 중국의 프로기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모두 중국의 상위 랭커들이자, 세계 챔피언 출신들입니다.
상담기란, 여러 명이 대국에 참여하는 바둑입니다. 같은 편끼리 별실 등에 모인 뒤 미리 마련된 바둑판에 돌을 놓아가며 충분히 검토한 다음 대표자가 착수하는 파격적인 방식입니다. 상담기에서는 기사가 머릿속에서만 계산하면서 대국에 임하는 것보다 더 좋은 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 여러 명이 상의해 착수하기 때문에 무리한 수나 악수의 가능성도 낮출 수 있습니다. 알파고가 연산 능력을 동원해 수많은 자료 속에서 최적의 수를 찾아내듯 프로기사들도 다양한 의견 속에서 최적의 수를 찾아가며 두게 됩니다.
상담기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룰입니다. 최선의 착점을 찾아 ‘완벽한’ 기보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창안 됐는데요. 실력이 월등한 1인을 다수가 ‘집단지성’을 발휘해 상대할 때 종종 펼쳐집니다. 따라서 비슷한 실력을 가진 기사들이 출전해 우열을 가리는 공식 대회에서는 당연히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 5인 1조 상담기는 유리할까? 불리할까?
물론 상담기라고 해서 다수가 늘 유리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최상의 팀워크를 이뤄내지 못하면 1명이 대국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기풍’을 가진 프로기사들이 각각 찾은 ‘최적의 수’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지점에서 어떻게 합의를 도출할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시간 제약’ 룰도 걸림돌입니다. 이번 상담기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2시간 30분입니다. 시간을 다 쓴 뒤에는 1분 안에 반드시 착수해야 하는 ‘초읽기’가 3회씩입니다. 토론 중간에도 주어진 시간은 흘러갑니다. 충분하지 않은 시간 내에서 ‘최적의 수’를 얼마나 빨리 찾아내는가도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연 인간의 집단지성은 ‘수 싸움’에서 인공지능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 상상도. 구글 딥마인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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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에 활력 불어넣은 인공지능의 등장
바둑 인구 감소로 침체를 맞았던 바둑계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모처럼 활력을 찾았습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 뿐만이 아니라, 중국 텐센트의 ‘형천’과 ‘절예’, 일본 드왕고와 도쿄대 연구팀이 공동 개발한 ‘딥젠고’ 등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끼리의 대결은 일반인들에게도 늘 화제가 됩니다. 공식 대회에 출전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새로운 장도 열렸습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한 편을 이뤄 ‘협업’ 바둑을 두는 페어 대국과, 시간 제한 없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끝장 대국’ 성사 여부도 관심사입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을 포함한 새로운 형태의 대국이 공식 대회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될 것입니다. 커제 9단은 “인공지능과 힘을 합쳐 새로운 바둑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도전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유덕관 기자 yd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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