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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수)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것 말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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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자 강화길

데이트폭력, 인터넷 여론 등 다뤄

“여성의 공포와 불안 계속 쓸 터”



한겨레

제22회 한겨레문학상 당선자 강화길.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다룬 고딕 소설을 좋아하고, 나도 그런 작품을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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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한겨레문학상 심사는 매우 치열했다. 제목부터 비슷하면서 다른 두 작품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 마지막 순간까지 경합을 벌였다. 두 응모작의 성취도는 엇비슷했으나, 지향하는 세계와 색깔은 판이했다.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다른 사람>이 당선작으로 결정되고, 응모자 강화길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는 반가운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심사 과정에서 <사람들>을 적극 밀었던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더 고무적이었다. ‘강화길’이라는 이름이 그만큼 신뢰를 주었다는 반증이겠다.

강화길(31)은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지난해 11월 첫 소설집 <괜찮은 사람>을 펴냈다. 올 3월에는 단편 ‘호수-다른 사람’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에 선정되었다. ‘호수-다른 사람’이 포함된 <괜찮은 사람>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노골적이거나 은밀한 폭력,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스릴러적 기법에 담아 그림으로써 강한 인상을 주었다. <문예중앙> 봄호에는 김승옥의 단편 ‘건’과 ‘염소는 힘이 세다’ 등에 보이는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요컨대 그는 2017년 현재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설에 담아내고 발언하는 작가다.

“등단 초기에는 여혐과 관련한 질문을 받아도 스스로 피하는 편이었어요. 작가 입장에서는 그런 게 어떤 해석의 한계를 지우는 것 같기도 해서요. 그렇게 많은 것을 참고 삼키는 상태로 계속 지내면서 불만과 분노도 생겼고, 주변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에피소드가 쌓이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단편집을 준비하던 작년 초에 결정했죠.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쓰고 싶은 걸 쓰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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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한겨레문학상 당선자 강화길.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다룬 고딕 소설을 좋아하고, 나도 그런 작품을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강화길은 그렇게 작가로서 자신의 길을 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페미니즘으로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24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 소설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규정하면 그게 목적이 되어 버리는 것 같잖아요? 소설은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동기나 출발의 이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죠.”

<다른 사람>은 데이트 폭력과, 최근 이슈가 되는 여성혐오와 같은 민감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진아는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재판에서 승소하고 자신이 겪은 일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주목과 응원을 받지만, 직장 동료 여성이 반박글을 올리면서 평판이 망가진다. 그는 어느날 트위터에서 자신에 관한 이상한 글을 발견하고 대학 시절 친구 유리와 수진을 떠올리며, 그 글을 쓴 사람을 찾아 고향 안진으로 간다. 안진은 단편 ‘호수-다른 사람’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 단편의 부제가 당선작인 장편 제목과 같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다른 사람’이란 누구일까.

“두 소설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이 피해자를 두고 ‘멍청한 여자’라고 말하는 게 불만이었어요. 나쁜 남자에게 빠지거나 어리석은 연애에 매달리거나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들한테 쉽사리 그런 말을 하죠. 그렇지만,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여성은 언제든 그런 상황에 놓일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력이나 계급과 무관하게 다만 여성이기 때문에 말이죠. 다른 사람이 그런 상황에 놓이면 그건 자기와는 무관하다며 자신과 타인을 분리시키는 풍토 때문에, 일을 당하고도 친구에게조차 고백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강화길은 첫 소설집 <괜찮은 사람>의 ‘작가의 말’ 자리에 20세기 영국 고딕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셜리 잭슨의 말을 인용해 놓았다. “잭슨 말고도 조이스 캐럴 오츠, 카슨 매컬러스, 브론테 자매, 마거릿 애트우드 같은 작가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최근에 읽은 로런 그로프의 <운명과 분노>도 좋았고요. 그러고 보니 여성 작가들뿐인데(웃음), 남성 작가로는 필립 로스와 이언 매큐언을 좋아합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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