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뒤 첫 신작으로 <쓰리 볼레로>
김용걸·김설진·김보람 각자 개성 살려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장은 “몇십년째 ‘볼레로’만 한다는 말이 있다”는 도발적 질문에 “사실이다. 공부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 계속 만들었는데, 아직도 지겹지 않다”며 웃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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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볼레로 덕후’. 모리스 라벨의 유명한 춤곡 ‘볼레로’만 무려 11번 안무했다. 내년에 재안무를 또 계획하고 있다. 이쯤 되면 대표작이 <볼레로>(2005)인 건 필연에 가깝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안성수(55) 국립현대무용단장 얘기다.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내 국립현대무용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세상사를 닮은 음악, 볼레로 “미국 줄리아드학교 재학 때 이미 그 매력에 푹 빠졌어요. 간단한 리듬이 기쁘게 두 번, 슬프게 두 번 반복을 계속하면서 살짝 변형되는데, 인간의 희로애락 같기도 하고 윤회사상을 환기하기도 하죠. 사람을 매혹시키는 똑똑한 곡이에요.” 설명 도중 그는 입으로 볼레로 리듬을 정확히 소리내기도 했다.
대중에게도 친근한 볼레로는 단 두 개의 주제가 18번 반복되는 작품이다. 작은북 소리로 시작해 악기들이 하나둘 끼어들어 점점 커지면서 절정으로 치닫자마자 간단명료하게 마무리된다. 발레곡으로 작곡돼 1928년 파리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뒤 세계 수많은 안무가들이 재해석했다. ‘20세기 발레의 혁명가’라 불리는 모리스 베자르 버전은 역작으로 꼽힌다.
볼레로는 지금도 ‘봄의 제전’과 더불어 안무가라면 한 번씩 도전해보고자 하는 작품이다. 대신 유명한 작품 덕을 보는 것만큼이나 그 명성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안 단장은 취임 뒤 첫 신작으로 또 볼레로를 기획했다. 김보람, 김설진, 김용걸. 소위 스타 안무가들이 소환됐다.
안무가 김용걸의 볼레로.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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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어야 한다는 신념의 집약 <쓰리 볼레로> 안 단장의 결단에는 지난해 김용걸(44)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가 학교 정기공연에서 선보인 볼레로가 큰 몫을 했다. “김 교수는 완전한 엔터테이너였다. 신뢰할 만한 이 작품에 믿고 보는 다른 두 엔터테이너 김보람과 김설진의 신작을 더해 가장 화려한 볼레로를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안 단장은 ‘엔터테인먼트’(즐거움)라는 표현을 거듭 썼다. “공연을 봤을 때 또 보고 싶은 느낌을 주는 것”이란다. 그는 또 “국립현대무용단 공연은 재미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관객의 검증을 받아 국립현대무용단만의 레퍼토리를 만들어 가겠다는 생각이다.
본인 체제에서 모든 공연을 매진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세웠다. 대중적이라고 예술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올해 국립현대무용단의 첫 공연 <혼합>은 한국적인 것과 한국적이지 않은 것을 해체·재조립하며 평단의 호평을 받음과 동시에 매진을 기록했다. <쓰리 볼레로>도 매진이 코앞이다.
안무가 김설진의 연습장면.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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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 짙은 세 스타 안무가의 삼색 볼레로 볼레로에 대해서는 훈수를 둘 법한데도, 그는 세 안무가에게 ‘20분 이내’라는 조건만 제시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취지이고, “엑기스만 보여달라”는 주문이다. 춤의 장르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 그의 작품처럼, 안무가들도 각자의 개성을 최대한으로 살렸다.
파리오페라발레단 출신 김용걸의 <볼레로>는 수원시립교향악단 85인조 오케스트라 라이브 연주에 맞춘다. 무용수 37인은 클래식 발레 동작을 기초로 다양한 몸짓을 조합하고 편집한다. 초연보다 동작의 디테일과 군무의 구성이 치밀하게 계산된 무대다. 안 감독은 “무용 애호가라면 베자르, 오하드 나하린, 심지어 제 ‘볼레로’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예능프로그램 ‘댄싱9’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김설진(36)은 <볼레로 만들기>에서 오케스트라 음악 대신 일상의 소리를 볼레로 리듬으로 확장한다. 무용단 무버 소속 남성 무용수 6인은 각기 다른 동작으로 일체감을 구현해내며 사회의 틀 안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구성원을 은유한다.
안무가 김보람(왼쪽). 국립현대무용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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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이면서도 유쾌함을 놓치지 않는 김보람(34)은 <철저하게 처절하게>를 통해 인간이 지닌 ‘표현의 기원’에 다가간다. 원곡의 선율과 리듬을 분해·재조립하여 편곡된 음악에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무용수 9인이 몸을 집중하여 내면의 움직임을 끌어낸다. 안 단장은 “여우 같은 세 안무가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굉장하다”며 “진지한 엔터테이너이자 지독한 연습벌레들의 삼색 볼레로를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라벨은 “나는 단 하나의 걸작만을 썼다. 그것이 ‘볼레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곡에는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역설적으로 <쓰리 볼레로>에서는 음악이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6월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씨제이(CJ)토월극장. (02)580-1300.
김혜경 프리랜서기자 salutkye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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