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는 평소 담합 등 불공정 행위 근절에 강한 소신을 밝혀온 인물. 오랜 관행으로 뿌리를 내린 건설업계 입찰 담합의 불공정 행위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 터라 건설사들이 공정위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할 처지에 놓였다.
새 수장을 맞은 공정위는 담합뿐 아니라 내부 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하도급 대금 미지급 등 건설업계의 불공정 관행을 공정위가 강도 높게 조사하고 과징금도 지금보다 최대 3배 더 물릴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25일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지난달까지 주요 20개 건설사가 담합 과징금으로 1조2338억원을 부과받았다. 현대건설이 2041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삼성물산(1837억원), 대림산업(1403억원), SK건설(962억원), 대우건설(855억원), GS건설(746억원), 포스코건설(710억원), 현대산업개발(623억원) 순이다.
최근 적발된 건설사 담합 사례를 보면, 평창동계올림픽 교통망 사업으로 진행 중인 58.8㎞ 길이 원주~강릉 고속철 공사 입찰 과정에서 현대건설, 한진중공업, 두산중공업, KCC건설 4개사가 담합을 한 것으로 드러나 시정 명령과 과징금 702억원이 부과됐다.
건설업계의 입찰 담합이 좀처럼 근절되지 않자 정치권은 올해 초 강력한 처벌조항을 만들었다. 국회는 올해 3월 2일 본회의를 열고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건설사가 3차례 공공공사 입찰 담합이 적발됐을 때 퇴출당하는 ‘삼진아웃제’ 적용 기간을 기존 3년에서 9년으로 늘렸다.
건산법 개정안은 자칫 부실공사로 이어져 국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입찰 담합을 척결하려는 조치로 진통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을 낸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기한을 정하지 않고 건설사가 3번 입찰 담합이 적발되면 퇴출당하는 안을 내놨으나 국회 교통위원회 소위원회 법안 심사에서 국토교통부가 절충안을 내면서 적용 기간을 9년으로 정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사실 입찰 담합은 그동안 적발 사례가 많아 개선돼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다른 산업군의 경우엔 입찰 담합을 개인의 일탈로 보는 데 반해 건설업계만 법안까지 등록 말소 처분하는 것은 과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호 공정위’ 출범으로 입찰 담합과 일감 몰아주기 등을 비롯한 건설업계의 적폐 청산을 위한 공정위의 칼날이 건설사를 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상조 후보자가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에 제출한 청문회 답변 자료에는 공정위의 정책 방향이 그대로 드러났다. 김 후보자는 “카르텔 등 불법행위가 적발돼 당하는 불이익이 매우 커지는 방향으로 과징금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대형 건설사를 비롯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에 대한 과징금을 높이겠다는 뜻이다.
김 후보자는 집단소송제 확대 도입 필요성도 내비쳤다. 집단소송제는 기업 부당행위로 인한 특정 피해자가 소송에서 이기면 나머지 피해자도 모두 배상받는 제도다. 김 후보자는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13년 4대강 입찰담합으로 건설사 주주들이 손해를 입었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건설업계는 자정 노력으로 과거의 불공정 관행이 많이 개선됐는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조사가 이뤄지면 가뜩이나 건설 경기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 불신만 키우게 된다고 항변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김상조 공정위원장 내정을 계기로 건설업계가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공정거래 관행 정착을 위해 적정공사비 확보, 입찰제도 개선 등의 현실적인 여건도 정부가 개선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환 기자(ch21@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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