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923년 12월 27일, 1924년 7월 3일·4일자 추가로 확인]
- 1면 머리에 '대동아 건설 비판' 사설
"아시아주의는 마술적 입발림, 조선 강압하고 만주까지 야욕…"
일본의 침략을 신랄하게 비판
'폭탄 압수' '인도인의 독립 운동' 日帝 검열로 신문에서 기사 삭제
일제 치하에서 조선일보가 식민 통치를 비판하다 기사와 사설이 삭제되고 압수된 지면들이 새로 확인됐다. 조선일보는 창간 이후 간행된 지면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동안 지면이 확인되지 않았던 36개호, 144면을 추가로 발견했다. 이 가운데 1923년 12월 27일자와 1924년 7월 3일·4일자 신문에 기사·논설이 삭제돼 있었다. 이 기사들과 논설은 조선총독부가 삭제·압수한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하여 1932년 간행한 '언문신문(諺文新聞) 차압기사집록(差押記事輯錄)'에 들어 있다. 1998년 LG상남언론재단이 이 자료집을 '일제시대 민족지 압수 기사 모음'(정진석 편)으로 간행하면서 그 내용은 알려졌지만 기사·논설이 실렸던 당시 지면은 이제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새로 확인된 일제가 삭제한 조선일보 지면들. 1924년 7월 3일자에 실린 ‘소위 대동아건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사설은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하는 명분이었던 아시아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위) 1923년 12월 27일자는 의열단원 김시현의 동생이 상해에서 귀국한 뒤 일제 경찰에 체포됐고 조사 과정에서 폭탄이 다수 압수됐다는 기사가 있었다.(아래 왼쪽) 1924년 7월 4일자는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는 인도인들의 독립운동 방략을 상세히 소개한 외신기사가 게재됐다.(아래 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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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7월 3일자 1면 머리에 실렸다 삭제된 '소위 대동아 건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사설은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하는 명분으로 내세웠던 아시아주의가 실은 제국주의적 침략을 위한 가면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아시아주의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은 아시아의 여러 국가와 민족이 힘을 합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대두했다. 일본 제국의 팽창이라는 저의를 감추며 내세운 '아시아는 하나'라는 주장은 한국·만주·중국, 나아가 동남아 침략 명분으로 이용됐고 '대동아공영권론'으로 연결됐다.
조선일보 사설은 '(아시아주의가) 동양의 민족에게 단결의 힘을 준 바 있는가.… 그것들은 필경 제국주의적 침략의 배경으로서 일종의 마술적 입발림이었노라. 영원한 화근을 배양한 것뿐이노라.… (일본이) 문명을 다소 앞서 깨친 것을 유일한 무기로 하여 먼저 조선을 강압하고 만주·몽고에까지도 야욕을 품고 침략을 그치지 않았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리고 일본의 한국 침략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마관조약(馬關條約)에 있어서 조선의 독립을 일·중 양국으로서 선명(宣明)하고 일·로 전역(戰役)은 동양의 평화와 조선의 보호를 표방하였음에도 결국 그 야심과 사계(詐計)는 현실화하여 일·한의 합병은 출현하였도다. 그러함에도 아직 아세아주의니, 동양의 평화이니를 입에 담음을 들음은 오히려 익살도 심한 일이 아닐까 보냐'고 비꼬았다.
1923년 12월 27일자 3면에 실렸다 삭제된 '폭탄을 다수 압수'란 기사는 유명한 독립운동가였던 의열단원 김시현의 동생인 김정현이 상해에서 귀국했다가 동대문 밖에서 종로경찰서에 체포됐고 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폭탄 100여 개를 갖고 돌아온 다른 인물이 적발돼 폭탄은 압수하고 용의자를 추적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김시현이 1923년 3월 국내 잠입해 경기도 경찰부 황옥 경부 등과 함께 일제 요인 암살을 기도하다 적발돼 독립운동가 10여 명이 체포된 직후에 발생했다. '황옥 경부 사건'은 작년 75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밀정'의 소재가 됐다.
1924년 7월 4일자 3면에 게재됐다 삭제된 '조직적이고 규칙적인 인도인의 독립운동'이란 기사는 중국 민국일보에 실린 봄베이 특파원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 영국 통치하에 있는 인도인들이 절대적으로 민족 독립을 주장하고, 보통선거에 의한 인도연방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실행 방략은 세금 납부 거부, 노동조합 조직 및 파업, 정치범 석방 요구 등이라고 상세히 소개했다.
[이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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