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동서대·경성대 강의공유… 대학을 '조립'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전국 최초로 강의 교차 개설

서로 강점분야 살려 약점 보완, 3년뒤 공동교양대학 설치 목표

- 입학생 절벽 시대 지방대 위기

연합 대학 등으로 경쟁력 키워 전북·제주대 등 전국으로 확산

"제기를 직접 차봅시다. 5번 이상 차면 '조별 발표'를 면제해 주겠습니다."

지난달 28일 부산 동서대 '한국인의 놀이 문화' 강의실 풍경이다. 마치 강의실에서 놀이를 하는 것 같은 2학점짜리 이 교양 과목은 동서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수업이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은 "대학 미래를 좌우할 방향타를 쥔 수업"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수업은 원래 동서대가 아니라 인근 경성대에 개설된 강좌다. 이날 강의도 경성대 국문과 황병익 교수가 맡았다. 대신 경성대에는 동서대 이동운 건축토목학부 교수가 강의하는 '창의적 건축과 아이디어 디자인' 강좌가 개설됐다. 두 학교 학생들이 강의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2학기엔 6개 강좌로 확대

부산의 중견 사립대인 동서대와 경성대가 이번 학기부터 공유 강좌를 개설, '대학 조립 프로젝트'의 첫 장을 열었다. 그간 대학별로 강좌 통합 논의가 있었지만 실행에 옮긴 것은 두 학교가 처음이다. 대학가에선 이 프로젝트가 학령(學齡) 인구 감소 시대의 유효한 생존 모델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장 총장은 "입학생 절벽 현상은 명문대가 아니라 동서대 같은 지방 사립대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며 "지방 사립대가 서울대를 흉내 내선 안 된다. 각 대학 장점만 골라 조립하는 식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부품을 결합해 만드는 스마트폰처럼, 지방대들도 서로의 강점인 학문 분야를 조립해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부산 사상구 동서대 강의실에서 황병익 경성대 교수가 진행하는 교양 과목 ‘한국인의 놀이 문화’ 강의에서 학생들이 제기를 차고 있다. 동서대와 경성대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학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교수진·시설·강의를 일부 공유하는 ‘대학 조립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두 대학은 대학 조립의 핵심축을 공유 강좌에서 찾았다. 상대적으로 이공계에 강한 동서대가 경성대에 과학 분야 교양강좌를 열고, 인문·사회 분야가 나은 경성대가 동서대에 관련 수업을 개설해 교육의 질을 함께 높이자는 것이다. 올해 1학기에 한 과목씩 개설한 공유 강좌는 올해 2학기에 6개로 확대된다. 오는 2020년까지는 아예 교양대학(리버럴아트칼리지)을 공동 설립·운영하기로 했다. 박성미 동서대 교학부장은 "리버럴아트칼리지에는 경쟁력 있는 두 학교의 교양강좌 20개 정도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학 통합 논의 확산 중

학생들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이다. '한국인의 놀이문화' 수업을 듣는 동서대 경영학과 4년 김근모(24)씨는 "공유 강좌가 이제서야 도입된 게 아쉬울 정도"라면서 "다른 학교의 대표 강좌를 우리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고 말했다. 공동 강좌를 가르치는 황병익 경성대 교수도 "각 대학에서 강점 분야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분야가 있기 마련"이라며 "대학 조립 프로젝트를 통해 상호 약점이 보완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두 학교는 영상미디어 등의 특성화 분야에서는 투자 예산도 같이 짜기로 했다. 예를 들어 드론 같은 고가 촬영장비는 두 학교가 한 번씩 번갈아 구입하되, 두 학교 학생들이 장비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남호수 동서대 기획연구처장은 "장비 한 대를 살 예산으로 두 대 장비를 마련하는 공유 경제 개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이미 도서관과 공연장 등 시설물을 양교(兩校) 학생들이 공동 사용하고 있다.

대학통합·연합대학 논의는 전국적으로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 영남 지역에선 지난 2월 부산가톨릭대·부산외국어대·영산대가 '하나의 대학' 운영을 위한 협의에 들어갔고, 부경대·경성대·동명대·부산예술대 등 4개 대학은 캠퍼스 공유 협약을 맺었다. 충청권에서도 공주대, 공주교대, 충남대, 한밭대 등이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전북대·제주대도 대학 간 자원 공유 형태의 연합대학을 추진하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도 통폐합에 적극적인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구조 개혁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김형원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