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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뜨거워진 지구… 미국 나무들, 북서쪽으로 피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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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철 카슨은 1962년 저서 '침묵의 봄'에서 농약 남용으로 새의 먹이인 곤충이 사라지면서 봄이 와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슨의 예측이 현실로 나타났다. 봄에 찾아오는 철새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 위기에 몰리고 있다. 심지어 나무도 온난화로 메말라가는 고향에서 사라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일부 동식물에게 닥친 위기라도 먹이사슬을 통해 생태계에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봄의 전령사 사라져

미국 뉴펀들랜드 메모리얼대의 스티븐 메이어 박사와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 공동 연구진은 지난 15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봄에 북미(北美) 대륙을 찾는 철새 48종 중 9종이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맞춰 오지 못해 후손을 퍼뜨리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봄이 되면 식물에 꽃이 피고 잎이 돋아나면서 벌레가 찾아온다. 철새는 이때 맞춰 와야 먹이를 구하고 새끼를 낳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북미 대륙 동부 지역은 갈수록 봄이 빨라지고 서부 지역은 봄이 늦어지고 있다. 철새들은 달라진 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진이 2001~2012년 철새 48종의 이동을 조사한 결과 봄이 시작되는 시점과 철새가 찾아오는 시점에 평균 연간 0.5일 격차가 발생했다. 10년이면 5일이나 격차가 벌어진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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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중 9종은 후손을 퍼뜨리지 못할 정도로 봄이 오는 시기를 놓쳤다. 미국 동부 지역에서는 봄에 잎이 돋는 시기가 해마다 1.2일씩 빨라지는데, 노랑부리뻐꾸기는 매년 0.2일 빨리오는 데 그쳤다. 10년이 지나자 노랑부리뻐꾸기가 봄이 시작되고 무려 10일이나 지나서 찾아왔다는 말이다. 그때가 되면 먹을 게 남지 않아 생존을 위협받는다. 반대로 봄이 늦어지는 서부는 새들이 너무 일찍 찾아와 메마른 가지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타났다.

나무들도 물 찾아 고향을 떠나

기후변화로 나무들도 사라지고 있다. 미국 퍼듀대 송린 페이 교수 연구진은 지난 17일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미국 동부의 나무들이 기후변화로 점점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동식물들이 점점 기온이 낮은 고지대나 북쪽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온난화에 따른 식물의 이동 형태가 종(種)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연구진이 1980~2015년 나무 86종의 분포도를 조사한 결과 47%는 10년마다 15.4㎞씩 서쪽으로 이동했다. 34%는 10년에 11㎞씩 북쪽으로 이동했다. 서쪽으로 간 나무는 대부분 꽃을 피우는 활엽수들이었다. 북향 식물은 침엽수가 대부분이었다.

나무는 기온과 강우량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미국 동부 지역은 지난 30년간 기온이 섭씨 0.16도 올랐다. 또 동남부 지역은 30년 동안 가뭄도 크게 늘었다. 페이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식물의 이동에는 기온보다 강우량이 단기적으로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라며 "기후변화의 영향을 이론적 모델이 아니라 실제 데이터를 통해 입증했다"고 밝혔다.

한국도 봄 짧아지고 여름 빨라져

우리나라도 사정이 비슷하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정재민 박사는 "2009년부터 꽃피는 시기를 추적한 결과 봄이 점점 짧아지고 여름이 일찍 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봄꽃인 개나리·진달래·철쭉의 개화(開花) 시기가 올해는 2009년보다 5~15일 빨라졌다. 개화 지속 기간은 2~3일 짧아졌다.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6월 초에 꽃이 피던 붉은병꽃·나도옥잠화·자주솜대 등은 5월 중순부터 꽃을 피웠다.

야생의 곤충들은 갈수록 빨라지는 개화 시기를 제때 따라잡지 못한다. 농가에서는 꿀벌 대신 사육한 뒤영벌을 농작물 꽃가루받이에 이용하고 있다.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윤형주 박사는 "사육 뒤영벌의 판매가 2002년 3만통에서 2015년에는 10만5000통으로 늘었다"며 "온난화로 봄이 빨라진 것을 자연에 있는 꿀벌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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