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
■2007년 5월25일 김재규 추도식
10년 전 경향신문에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망 27주기 추도식이 열렸다는 기사가 짤막하게 실렸습니다.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9년 10월26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권총으로 살해했죠. 그리고 이듬해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처형됐는데요. 처형된 날짜가 1980년 5월24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이때 추도식이 열린 겁니다. 추도식에는 강신옥 변호사와 함세웅 신부 등 민주화 운동 관련 인사들이 참석했다고 기사는 적고 있습니다. 이때에도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김재규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요직을 맡았습니다. 10·26 당시 맡고 있었던 중앙정보부장직 외에도 유신 정권 하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고, 건설교통부 장관을 맡아 한계령 도로 건설 사업 등 박정희 정권의 토건 사업들을 진두지휘하기도 했습니다. 독재 정권의 요인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일설에는 그가 10·26 이전부터 유신의 방향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고, 장준하 등 민주화 운동 인사들을 물밑에서 돕기도 했다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또 최근 국정농단 사태의 출발점이었던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직접 조사하고, 최태민의 비리와 부정을 처음으로 밝혀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최태민의 비리에 눈 감으려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10·26 사태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내놓습니다. 실제로 그는 재판 과정에서 “민주화를 위하여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며 정의감에서 결행한 의거였음을 주장했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거죠.
그러나 단지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생긴 사건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당시 박정희의 총애를 받던 차지철 경호실장이 경호 업무 외에 다른 영역에서까지 월권 행위를 일삼았고, 이에 항의하는 김재규에 박정희가 도리어 면박을 주는 경우까지 생기자 앙심을 품고 일을 냈다는 겁니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서’라는 얘기는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갖다붙인 명분에 불과했을 거라는 거죠.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의 행동이 유신 독재의 막을 내리는 데 일조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그는 목숨까지 잃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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