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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리셋 코리아] 왕진·가정간호 확대 … 병원 임종 절반으로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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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코리아 복지분과 제안

75%가 병원서 사망, 암환자는 91%

집에서 가족과 웰다잉 할 수 있게

통합적 호스피스 체계 만들어야

미리 연명의료 거부 밝히면 도움

독거노인 고독사 막을 시스템도

고령화 시대 ‘웰다잉’ 늘리려면
중앙일보

지난 18일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중증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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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서 나는 그르렁거리는 소리, 가래 뽑는 기계의 소음….

22일 오전 서울 강북지역 한 요양병원 중환자실 모습이다. 6인실, 12인실, 1인실로 된 세 개의 중환자실에 말기 환자들이 꽉 차 있다. 대부분 인공호흡기를 달고 거친 숨을 몰아쉰다. 한 할머니는 뜻 모를 고함을 계속 지른다. 섬망(?妄·극심한 혼돈 증세) 증세다. 어떤 환자는 욕창을 예방한다고 둔부를 드러냈고 다른 환자는 동공이 천장에 고정돼 있다. 상당수는 눈을 감고 있다.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병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흔하디 흔한 병상별 천 커튼(칸막이)도 없다. 이렇게 보내다 임종이 닥치면 인근 큰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다. 응급조치를 받으려는 게 아니라 임종하기 위해서다.

말기 질환을 앓는 대다수 노인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종합병원이라고 해서 별로 다를 바 없다. 24시간 환하게 불이 켜지고 의료기기 소음이 끊이지 않는 차가운 병실에서 가족과 분리된 채 마지막을 보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을 자랑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생의 마지막 관리는 후진국 수준이다.

2003년 병원 사망자, 재택 임종 첫 추월

한국인은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숨진다. 2015년 사망자의 75%가량이 병원에서 숨졌다. 집이나 사회복지시설(요양원 등) 사망자는 19.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사고나 사건 등으로 숨진다. 2003년 병원 사망자가 재택 임종을 추월한 이후 해마다 병원 사망이 증가했다. 영국은 2008년 병원 사망이 60%에 가까웠으나 2011년 51%로 떨어진 데 비해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다. 암 환자는 더 심하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2015년 암 사망자의 90.6%가 병원에서 숨졌다. 처음으로 90%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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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사망은 선조들이 꺼린 ‘현대판 객사(客死)’다. 이렇게 말한 이유가 있다.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연구팀이 2015년 암 환자 352명의 임종을 분석했더니 마지막 일주일이라도 집에서 보낸 사람의 평온한 정도가 병원 사망자보다 69% 높고 고통은 25%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들의 슬픔도 적었다. 일본 연구팀 조사에서는 ‘잔여수명 2개월’ 진단을 받은 사람이 집에서 마지막을 보냈더니 병원 사망자보다 일주일 더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복지분과는 치열한 토론 끝에 병원 사망을 절반으로 줄여 품위 있는 마무리를 실현하는 것을 어젠다로 제안했다. 위원들은 “병원 사망을 줄이려면 생의 마지막 관리를 위한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송인한 분과장(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의료 서비스와 함께 심리적 지지, 후원기관 연계, 임종 시 지역사회 자원의 지원, 배우자 사별에 대한 이해 등 다양한 접근 방식의 서비스가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들은 우선적 과제로 의사 왕진을 신설하고 가정간호(간병)를 확대해 가정 진료 체계를 갖추자고 제안했다. 왕진은 극소수의 의사가 실험적으로 진행한다. 수가조차 만들어져 있지 않다.

간호사의 방문 진료도 미미하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퇴원 환자 140~150명(월평균)만 관리한다. 이 병원 오은경 가정간호사업팀장은 “병원에 있으면 섬망이 오고 감염 위험에 노출된다. 암 환자는 대개 집에서 죽음을 맞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하정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들이 환자 임종에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며 “임종 전 환자의 통증을 줄이기 위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 말기암 환자(75·서울 관악구)의 딸 조모(44)씨는 “전담 간호사가 24시간 응대해 주고 매주 1회 이상 집으로 와서 통증 조절 등의 관리를 해 주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 환자는 짧은 대화를 가끔씩 하고 심리적 안정을 되찾으면서 복부 팽만 불편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가정호스피스 기관이 21개에 불과하다.

독거 노인의 고독사도 문제다. 국립암센터 장윤정 과장은 “독거 노인은 소규모 너싱홈(10명 이내의 환자들을 돌보는 시설), 의료와 주거가 결합된 시설, 요양원·공동생활가정 등에서 생의 마지막 관리를 돕되 장기요양보험이 이런 기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실정에 맞게 케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좋다. 부산시는 저소득층 말기 환자와 가족을 위한 통합적 호스피스 사업을 진행한다. 의사·간호사 등 의료 인력 외에 사회복지사·성직자·자원봉사자 등이 집을 방문해서 품위 있는 임종을 돕는다. 신체·심리적 돌봄뿐 아니라 영적 돌봄, 사별 가족 상담, 경제적 지원을 실시한다. 대상자 529명(지난해 말) 중 상당수는 재택 임종을 원해 가정간호(간병)를 활발하게 진행한다.

집에서 산 말기 환자, 병원보다 1주일 더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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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림 부산호스피스완화케어센터 사무국장은 “단순히 고통 완화에 그치지 않고 전문적 상담과 사후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 말기 환자들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임종 상황이 닥치면 연명 의료를 거부하겠다고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 두는 것도 병원 사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게 있으면 연명의료를 거부하고 탈(脫)병원을 촉진할 수 있다. 8월 호스피스·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할 때 법정 의향서 서식(내년 2월 시행)을 앞당겨 활용하는 것을 검토해 볼 만하다.

검시(檢屍) 제도도 보완해야 한다. 환자가 퇴원 후 48시간 내에 집에서 숨지면 담당의사를 거치지 않고도 병사(病死)진단서가 나온다. 하지만 48시간이 지나면 의사가 검시해야 한다. 병사진단서가 없으면 변사(變死)로 처리돼 수사를 받아야 한다. 서울대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개업 의사에게 검시 자격증을 줘서 이들이 재택 사망자의 검시를 담당하면 된다”고 말했다. 가정에서 장례를 치르기 힘들기 때문에 장례는 전문 장례식장에서 치르면 된다. 장례식장이 검시 의사를 연결하는 경우가 많다.

중앙일보·JTBC의 시민 의견 수렴 사이트 ‘시민마이크(peoplemic.com)’에도 본인이 사망 장소를 미리 선택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아이디 ‘nkw4****’는 “가장 편안한 집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조용히 임종을 맞고 싶다. 임종 장소의 자유는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종******’은 “삶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재택 임종의 수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정종훈·박정렬 기자, 김혜진 인턴기자 ssshin@joongang.co.kr

신성식.정종훈.박정렬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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