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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사우디서 대테러 동맹 강조한 트럼프, 민감 사안은 뒷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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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극단주의는 달라"…인권탄압·억압적 정권 언급 안 해

연합뉴스

21일 이슬람 아랍-미국 정상회담에서 연설하는 트럼프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정광훈 기자 = 취임 후 첫 외국 순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과 극단주의를 구별하는 새로운 해석을 내놔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취임 첫 방문국으로 전략적 무역 파트너인 멕시코나 캐나다를 방문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수니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문 첫날인 21일 사우디와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거래 계약을 체결해 비즈니스 대통령의 면모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관심을 끈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슬람 아랍-미국 정상회담에서 한 기조연설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슬람권 55개국 지도자들 앞에서 테러리즘과 이슬람 극단주의의 상관 관계를 설파했다. 그는 이슬람은 본질적으로 평화의 종교이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의 하나라고 했다. 그러나 이슬람권 내부의 극단주의 세력들이 문제라며 이들을 지구상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33분간의 연설 대부분을 대테러 전쟁의 정의를 설명하고 신성한 종교인 이슬람과 극단주의를 차별화하는데 할애했다. 취임 전 이슬람은 '증오의 종교'라며 이슬람권 국민의 미국 방문을 차단해야 한다고 했던 것과 180도 달라진 태도다. 그는 지난 해 대선 때도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지만, 이번 연설에서는 일절 쓰지 않았다.

이슬람권의 단골 이슈인 인권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것도 주목된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팽창과 극단주의 세력의 도전에 공통적으로 직면한 수니 이슬람 국가들의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대신 대테러 전쟁에 적극 동참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에서 편을 가르고 싶은 생각은 없다면서도 지역 갈등 책임의 상당 부분이 이란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이 레바논에서 이라크, 예멘까지 자금과 무기를 제공하고 테러리스트들과 민병대, 기타 극단주의 단체들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이끄는 이란 정권이지 국민이 아니라며 정권과 국민의 구별을 시도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지난해 대선 유세 기간 "이슬람은 우리를 증오한다"며 무슬림들의 미국 입국 "완전 차단"을 주장했던 선동적 발언과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랍권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일단 긍정적 평가를 보내면서도 한 차례 연설로 지난 수 년간의 발언을 덮을 수는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 방문국으로 이슬람 3대 성지가 있는 사우디를 택한 것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 방문을 마친 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베들레헴을 방문하고, 이어 바티칸을 거쳐 브뤼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세계 3대 종교 발상지와 성지를 차례로 방문하는 것은 종교 간 화해를 호소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3대 성지를 방문하는 것은 세계 평화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해결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연설에서 "이들 세 종교가 협력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를 비롯해 세계 평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권 탄압과 역내 권위주의 정권 등 민감한 문제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전혀 없었던 점을 놓고 비판적 견해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여기에 가르치러 온 게 아니다"라며 상호 공유하는 이익과 가치에 기반을 둔 파트너십을 제공하러 온 것이라고 했다. 인권문제를 공개 거론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발언이다.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우리의 국가안보 이해와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애덤 쉬프 하원의원도 미국의 국제 지도력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여성에게 얼굴을 가리도록 하고, 남성 후견인의 허가 없이는 여성이 외국을 나갈 수도 없는 나라를 첫 방문국으로 정한 것은 매우 이상한 선택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과 테러리즘의 관계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수위에는 큰 변화가 엿보인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마크 두보위츠는 "이번 행정부의 대 이란 정책은 버락 오바마 전 정권과 180도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국가들을 제쳐두고 사우디와 이스라엘을 먼저 방문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임 오바마 정권의 정책과 차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우디 국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 딸 이방카의 일거수일투족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환호하는 분위기라고 외신은 전했다.

barak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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