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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김성탁의 유레카, 유럽] 프랑스 대선 낙제, 영국 총선도 잿빛 … 중도좌파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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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 집권당

금융위기로 쪼들리며 복지 축소

국민들, 우향우 정책에 분노 폭발

극우·포퓰리즘·선명좌파에 밀려

중앙일보

지난달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유권자가 대선 후보 포스터 앞을 지나치고 있다. 왼쪽이 중도좌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후보, 오른쪽은 중도파 신생정당 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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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취임 직후 선보인 파격은 60년 간 프랑스 정치를 양분해온 중도좌파 사회당과 중도우파 공화당의 아성을 허물기 위한 조치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첫 내각의 총리에 공화당 출신인 에두아르 필리프를 임명했고, 첫 각료 인선에서도 공화당 출신 2명, 중도파 3명, 사회당 출신 4명, 극좌 성향 2명을 발탁했다.

마크롱발 정계개편 시도로 6월 총선을 앞둔 두 거대 정당이 흔들리고 있지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사회당이다. 사회당은 현재 하원 577석 중 295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대선 1차투표에서 브누아 아몽 후보가 6.4%의 지지율을 얻는데 그쳐 5위로 탈락했다.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가 결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가족 허위 보좌관 고용 의혹에도 불구하고 1차에서 20%를 얻어 3위를 한 것과 차이가 있다.

중도좌파 정당의 몰락이 프랑스만의 현상은 아니다. 사회당·사회민주당 등의 이름을 쓰는 중도좌파 정당들은 10여년 전만 해도 유럽 대부분 나라에서 집권당이었다. 하지만 올해 기준으로 상황이 반대가 됐다. 선거를 거듭할 수록 중도좌파 정당들은 집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현재 공화당·보수당·기독민주당 등 우파나 중도우파 성향의 정당이 집권 중인 유럽 국가는 벨기에·덴마크·핀란드·네덜란드·노르웨이·영국 등이다. 연정 없이 단독으로 집권당이 된 곳들이다. 오스트리아·포르투갈·스웨덴은 중도좌파 정당이 다른 정당과 연정을 꾸린 뒤에야 집권당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독일에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중도우파 기독민주당에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소수 정당으로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정도다. 9월 총선을 앞두고 최근 실시된 주의회 선거에서 마르틴 슐츠 사민당 당수의 고향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서도 기민당에 져 타격을 입었다.

동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헝가리와 폴란드는 아예 극우 정당이 집권 중이다. 불가리아와 라트비아는 중도우파가, 리투아니아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소수 정당으로 연정에 참여하고 있다.

중도좌파 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한 곳은 이탈리아·그리스·체코·루마니아·슬로바키아·에스토니아 정도에 불과하다.

유럽 정치의 추가 중도좌파에서 우파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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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유럽에선 완벽에 가까운 복지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이 시기에 복지 확충을 주 의제로 제시했던 좌파와 중도좌파 정당들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복지체계가 일단 갖춰진 뒤에는 좌파 정당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시장의 기능이 중시되고 세계화가 거세게 진행된 1990년대에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 국에선 실업률이 오르고 실소득은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국민소득은 늘어나지만 근로자 계층의 임금은 떨어지고, 빈부 격차는 심화했다. 근로자 계층과 중산층 이하가 이런 고통의 중심에 있었다.

같은 시기에 정치에서 이념의 중요성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유럽의 좌파 정치인들은 우파의 노선으로까지 확장한 ‘제3의 길’을 앞다퉈 모색했다. 동시에 우파 정당들이 복지 확대 등 유권자의 구미에 맞춰 좌쪽으로 이동하면서 좌우의 구분은 흐려졌다.

이런 가운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정치의 지각변동이 발생했다.

금융위기의 여파는 아직도 유럽에서 이어지고 있고, 청년층 실업률이 20~40%인 나라가 상당수다. 경제 위기가 터졌지만 복지 지출과 고령화 등으로 나라빚이 많은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재정 안정화를 추구했다. 1993년 발효한 마스트리흐트조약(연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각각 GDP의 3%와 60% 넘으면 안 됨)에 따라서다. 경제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세금을 줄이는 대신 지출을 줄여 예산의 균형을 맞추려 한 것이다.

그 결과 사회 보장이 쪼그라들었고 그 타격은 실업자와 취약계층에 집중됐다. 정부의 대책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나쁜 영향을 미치자, 중도좌파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는 흔들렸다. 중도좌파가 우파와 비슷한 정책을 내놓고 실제 행동도 비슷하게 하는 데 대해 좌파 지지자들의 분노가 퍼진 것이다. 떠나간 민심의 빈자리는 극우와 포퓰리즘 정당이 채웠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반(反)이민정서와 반 시장주의 기류를 타고 국수주의 포퓰리즘 정당이 기세를 올렸다.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후보가 결선에서 34%를 득표했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벨기에·덴마크·핀란드·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스웨덴·영국 에서도 극우 정당이 세를 얻고 있다. 프랑스 대선에서 극좌 멜랑숑이 1차에서 19.6%를 득표하는 등 좌파 지지자들은 선명한 좌파에만 환호를 보내고 있다.

유럽의 정치 환경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포퓰리즘 기류는 프랑스인들의 마크롱 선출로 일단 대기 모드로 들어갔다. 하지만 당장 6월 8일 영국 총선에서 중도좌파 노동당은 여론조사대로라면 보수당에 참패할 것으로 보인다. 6월 11, 18일 치러지는 프랑스 총선에선 중도 대통령의 성공과 좌파의 몰락, 기존 우파와 극우의 운명 등이 모두 결정된다.

10월 조기총선을 확정 지은 오스트리아에서 집권 사회민주당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극우 자유당과 30세의 젊은 당 대표를 앞세운 중도우파 국민당 중 어느 당이 1당으로 올라설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저성장이 뉴 노멀이 된 시대에서 유럽의 정치적 격변은 다른 나라들에게도 남의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런던 특파원 sunty@joongang.co.kr

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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