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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박근혜 정부 ‘비정상의 정상화’는 결국 ‘좌파 척결’…‘블랙리스트’도 여기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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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국정기조였던 ‘비정상의 정상화’는 정부에 비판적이던 이른바 ‘종북 좌파세력’ 척결을 핵심으로 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65)이 문화·예술계를 종북좌파 세력의 ‘온상’으로 지목한 뒤 해당 성향의 단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의 10회 공판에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64)이 증인으로 출석해 이 같은 내용을 증언했다. 박 전 수석은 김 전 실장으로부터 ‘민간단체보조금 TF’ 운영을 지시 받고,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개인·단체에 정부 예산 지원배제를 실행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날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 전 수석이 2013년 8월부터 2014년 6월까지 10개월 간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며 작성한 업무수첩 8권을 제시했다. 업무수첩 기록 가운데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 내용이 이날 재판의 주요 쟁점이었다.

박 전 수석의 증언과 수첩내용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문화·예술계의 ‘좌편향’을 지적하며 ‘좌파 척결’을 통해 ‘비정상의 정상화’를 지시했다. 2013년 9월30일 20차 대수비에 참석한 박 전 대통령은 “‘문화예술’이 국정목표인데 롯데와 CJ 등이 협조를 안하고 있다”며 “이 투자자들이 좌편향 성향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은 박 전 수석 업무수첩에 기재된 ‘2013년 12월19일 당 최고위원 송년만찬’ 메모를 공개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이 자리에서 “좌파가 갖고 있는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와야 한다. 우파가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지만 MB(이명박 정부) 때 좌파척결을 하지 않아 나라가 비정상”이라며 개탄했다고 한다. 박 전 수석은 “수첩에 적힌 내용을 보고 해당 내용을 특검에 진술했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박 전 대통령의 뜻에 맞춰 실수비에서 수석비서관들에게 ‘좌파 척결’을 거듭 강조했다. 박 전 수석은 “10개월 남짓 정무수석으로 근무하는 동안 각종 회의에서 ‘나라가 너무 편향돼있으니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정기조가 항상 유지됐다”고 증언했다.

박 전 수석 수첩에 따르면, 2013년 9월9일 실수비에서 김 전 실장은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가 상영되는 문제를 두고 “종북 세력을 지원할 의도다. 제작자·편집자는 용서가 안 된다”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사건을 시작으로 종북·친북 척결에 강한 적개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는 김 전 실장의 발언 내용을 박 전 수석이 메모하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은 이후 실수비에서도 ‘종북 좌파를 쓸어내야’,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 5년 안에 척결 곤란’이라며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2013년 12월19일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와야 한다”고 말한 다음날 김 전 실장은 수석비서관들에게 좌파 성향 단체들에 대한 정부 지원 상황을 전수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박 전 수석은 “일단 전체적인 실태를 파악한 뒤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해 조치를 취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며 “결국 그것이 이른바 ‘좌파성향’ 단체들에 대한 조치로 나아간 것으로 생각된다”고 증언했다.

박 전 수석의 수첩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이후 실수비에서 ‘좌파단체 지원 현황 전수조사’를 거듭 지시했다. 박 전 수석은 ‘지금 형국은 우파가 좌파 위에 떠있는 섬’, ‘MB까지 총 15년 동안 내려진 좌파 뿌리가 깊다’는 취지의 김 전 실장의 발언을 수첩에 받아적었다. 당시 김 전 실장이 ‘좌파 척결에 진도가 잘 안나간다’는 내용을 말하며 이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박 전 수석은 “결국은 (정부지원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에서 좌파 단체에 대한 실태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나 짐작한다”고 이날 법정에서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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