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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비전향 장기수 강용주 “학살자는 반성 않는데 왜 나를 처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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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8일 보안관찰법 위반 첫 재판서 주장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 연루, 국보법 위반 옥살이

보안관찰법 신고의무 지키지 않았다고 세 번째 재판

강씨 “신고의무 강제, 양심·사생활의 자유 침해”



한겨레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강용주씨.


‘구미 유학생 간첩단사건’에 연루돼 14년간 옥고를 치른 뒤 보안관찰법의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비전향 장기수 강용주(55)씨에 대한 첫 재판이 28일 열렸다. 강씨는 “보안관찰법의 신고의무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보안관찰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조광국 판사 심리로 이날 열린 첫 재판서 강씨 쪽은 “보안관찰법의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양심에 따른 불복종행위”라고 주장했다. 강씨 변호인은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신고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불복종은 강씨가 전 인생과 전인격을 걸쳐 지켜온 진지하고 절박한 윤리적 확신의 결과물이다. 형사처벌을 통해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 타당한지 검토해주기 바란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강씨는 이날 신고의무를 강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보안관찰법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강씨에 대한 보안관찰처분은 확정판결에 근거한 것으로서 적법하게 내려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강씨도 이날 법정에서 직접 입을 열었다. 강씨는 “유엔은 (정부가) 나에 대한 전향을 요구하고 가혹한 처벌을 내린 것을 두고 양심의 자유와 평등권을 위배한다고 지적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물처럼, 공기처럼 보장돼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 프라이버시의 자유는 그 밑바탕으로서, 자유로운 개인의 전제조건”이라고도 했다. 그는 또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서전을 내고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규정한 것을 언급하며 “학살자는 반성하지 않고 있는데 왜 맞서 싸운 나한테는 보안관찰처분을 내리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강씨는 전두환 신군부 시절인 1985년 안기부 주도의 ‘구미 유학생 간첩단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전향서를 쓰기를 거부한 끝에 14년간 옥살이를 했다. 강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3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을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로 규정하고, 신고의무를 강제하는 보안관찰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졌다. 보안관찰 처분을 받으면 3달마다 주거지를 옮기거나 10일 이상 여행할 때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강씨는 앞서 같은 혐의로 두 차례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시민사회에선 보안관찰법이 개인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내가강용주다’ 선언을 이어가며 보안관찰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아래는 강씨 법정 발언 전문.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1980년 광주에서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시민 학살할 때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까지 광주항쟁 참가했고, 도청이 계엄군 의해 함락된 5월27일 새벽 4시 시민들 체포돼 나오는 걸 보고 총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아픔, 죄스러움..대학에 들어가서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은 전두환이었고 신군부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광주시민 학살한 전두환 정권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나의 전체를 걸고 그 정권과 싸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다 국보법 위반으로 체포돼서 1985년 남산 안기부에 끌려갔습니다. 안기부에서 35일 동안 고문당하고, 남산 안기부 수사관들이 저에게 써준 자료를 보고 외우라고 했습니다. 그 써주고 외운 자료를 갖고 엠비시(MBC) 방송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런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에게, 아무리 폭력에 의해서라도 굴복해서 전두환의 개가 되어서 주절거렸던 저 자신. 저는 쓰레기통 안에 처박혀 버린 저 자신을 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온전한 모습으로 망원동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게 제가 14년 동안 전향제와 반대해서 싸우게 된 이유입니다.

요즘 전두환 대통령 회고록이 흥행합니다. ‘광주사태는 폭도들의 난동이고, 북한의 특수부대가 일으킨 것’이라고 합니다. 전두환은 저와 마찬가지로 보안관찰법의 대상자입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뿐 아니고, 형법상 내란죄나 군형법상 반란죄로 3년 이상 징역형을 받은, 1994년 무기징역 선고받은 전두환과 노태우도 보안관찰 대상자인데 그 사람들에게는 신고의무를 부과하지 않았습니다.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학살에 맞서 싸우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세계인권선언에선 그렇게 얘기합니다. 시민이 저항이란 최후의 수단 물리지 않도록 인권 보장돼야 한다고. 학살자는 반성하지 않고, 이북에서 내려온 특수부대가 일으켰고 폭도부대라고 하는데 거기에 맞서 싸운 저한테는 왜 보안관찰처분 내리는 겁니까? 저는 법이 법으로서 존재하려고 하면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국 대법원 정문 앞에는 ‘equal justice under law’, 법 앞에서 평등해서 정의가 실현된다고 합니다. ‘equal justice' 없는 법은 국가의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감옥에서 14년 동안 전향제도 폐지 위해 싸웠을 때, 헌재는 전향제도는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각하결정을 내렸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전향제도가 준법서약서로 바뀌고, 2003년 헌재는 전향제도에 이어지는 준법서약서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제가 감옥 있을 때 1998년 유엔 인권이사회에선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협약에 근거, 전향제와 전향을 이유로 한 차별적 처우가 국제인권협약의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고 했습니다. 유엔은 강용주에게 전향을 요구하고 그로 인해 차별하고 가혹한 처벌을 한 것은 유엔이 정한 양심의 자유 평등권 위배하는 것이라며 명예를 회복하라는 판결 내렸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엔은 보안관찰법이 유엔이 정한 인권에 반하는 것이라서 폐지하라고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남용의 여지가 커서 폐지하라고 합니다. 헌재는 완고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유엔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서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했을 때 일본 정부 듣지 않았고, 우리는 일본 정부를 비판합니다. 거꾸로 우리 정부에 대해선 우리가 뭐라고 외쳐야 합니까? 제가 바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물처럼, 공기처럼 보장돼야 한다는 것. 그 밑바탕에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프라이버시의 자유라는 것들이 자유로운 개인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근대시민으로서 우리 사회에 인권과 민주주의 보장되는 그런 사회가 되도록, 어느 순간에도 어떠한 불이익이 오더라도 저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 나의 프라이버시를 결코 국가에 의해 침해당하도록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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