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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가이드가 창문을 열고 외쳤다 "돈의 노예가 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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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샌프란시스코 휩쓴 히피운동 50주년

드영미술관 등 캘리포니아 곳곳 기념 전시

음악·예술부터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영향

전쟁(베트남전)은 장기화하면서 지리멸렬해졌다. 경제는 발전하고 삶은 윤택해졌지만 계층과 인종 갈등의 골은 깊어갔다. 사회 모순에 반기를 든 젊은이 10만 명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날마다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노래를 불렀고, 한동안 의식주를 공유하는 유토피아를 형성했다. 50년 전인 196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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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샌프란시스코에는 히피운동 50주년 기념 전시가 활발하다. 드영 박물관에 전시된 1960년대 록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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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으로 불리는 히피 운동이 올해로 반세기를 맞았다. 샌프란시스코 등 캘리포니아주 곳곳에서 기념 전시와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마약과 자유연애, 너절한 옷차림으로 상징되는 히피가 뭐가 대단해서 기념하냐고?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의문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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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곳곳을 다니며 60년대로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는 매직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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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버스 가이드 앨리슨 휘스모어가 승객에게 꽃을 나눠주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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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샌프란시스코 최대 번화가인 유니언 스퀘어에서 기괴하게 생긴 매직버스에 올라탔다. 형형색색 무늬에 늘어진 옷, 머리에 꽃을 꽂은 가이드 앨리슨 휘스모어가 밝은 웃음으로 맞아줬다. 버스가 출발하자 스콧 매킨지의 노래 ‘샌프란시스코’가 흘러나왔다.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휘스모어는 노래에 맞춰 여행객에게 꽃을 나눠줬다. 비틀스, 제니스 조플린, 마마스앤드파파스 등 60년대 가수들의 친숙한 노래가 이어졌다. 차이나타운, 노스비치를 지나며 수많은 이민자와 히피를 받아들인 샌프란시스코의 역사를 들었다. 금융회사와 대기업 본사가 밀집한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 접어들자 휘스모어가 버스 창문을 열고 외쳤다. “돈의 노예가 되지 마세요. 빨리 이 거리를 벗어나세요. 정치인의 선동에 속지 마세요!” 신호를 기다리던 행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버스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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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헤이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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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가 여자친구와 동거했던 집은 현재 기념품점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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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 애시베리 거리에는 지금도 히피 복장을 한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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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투어를 마친 뒤 차창으로만 봤던 헤이트 애시베리(Haight Ashbury) 지역을 다시 찾았다. 이곳은 60년대 히피 운동의 거점으로, 수만 명이 모여 반전(反戰)·성평등·인종차별 반대 등을 외쳤다.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여자친구와 동거했던 집, 의사들이 무료 진료를 했던 공간을 둘러봤다. 시간이 멈춘 듯 히피 복장을 한 채 거리를 서성이는 사람이 많았다. 단정한 옷차림과 말끔한 팔뚝이 머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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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헤이트 거리를 행진하는 사람들. [사진 샌프란시스코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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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한 해에만 히피 10만 명이 샌프란시스코에 운집했다. [사진 샌프란시스코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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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히피들의 성지였던 골든게이트 공원은 지금 시민들의 아늑한 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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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트 애시베리 인근에는 골든게이트 공원이 있다. 67년 히피들이 수시로 집회를 열었던 장소다. 공원 안 드영 박물관(De young museum)에서 ‘사랑의 여름’ 50주년 기념 전시(8월 20일까지)를 앞두고 관람 기회를 제공했다. 사진·미술·패션 등 히피 관련 전시품만 300점에 달했다. 현란한 공연 포스터와 몽환적인 영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미리엄 뉴커머 드영 박물관 이사는 “단지 로큰록 음악뿐 아니라 파격적인 그림과 글씨 등 샌프란시스코에서 태동한 히피 패션은 주류 문화를 뒤흔들 만큼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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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영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몽환적인 그래픽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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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동쪽 버클리도 히피 운동의 또 하나의 거점이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는 64년부터 자유발언 운동의 진앙지였다. 메시지는 히피들과 다르지 않았다. 전쟁과 온갖 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마침 UC버클리에서 운영하는 박물관 BAMPFA에서 ‘히피 모더니즘:유토피아를 위한 투쟁’ 전시(5월 21일까지)가 진행 중이었다. 히피의 창의성에 주목한 전시였다. 안내를 맡은 그레그 카스티요 UC버클리 건축과 교수는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에 염증을 느낀 히피들은 동양철학·생태주의에 천착했다”며 “재활용·친환경 건축, 유기농 음식 등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문화도 히피들이 창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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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도 히피운동의 거점이었다. 학교 주변에서는 지금도 히피풍 옷과 기념품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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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MPFA에 전시 중인 히피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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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도 히피였다는 건 꽤 유명한 사실이다. 샌프란시스코 태생인 잡스는 대학을 중퇴한 뒤 오리건주 농촌의 히피 공동체에서 수개월을 보냈다. 이때 잡스는 선불교, 동양의 신비주의에 빠졌고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카스티요 교수는 “소수의 전문가만 다루던 PC 같은 기기를 대중화시킨 건 잡스를 비롯한 히피들이었다”며 “히피는 정보 공유, 기술을 통한 더 나은 삶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히피가 대중음악에 미친 영향을 보려면 로스앤젤레스(LA)로 가면 된다. 미국 팝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LA 그래미 박물관에서 ‘사랑의 여름’을 주제로 한 사진전(5월 14일까지)이 진행 중이다. 사진가 짐 마셜이 67년에 촬영한 사진 60점을 전시했다. 지미 헨드릭스가 연주 중 기타에 불을 지른 사진이 단연 눈을 끌었다. 록 음악 역사의 획을 그은 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 당시 사진이다. 이 페스티벌을 통해 헨드릭스는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고, 말랑말랑한 비틀스풍 로큰롤보다 훨씬 거칠고 몽환적인 사운드의 사이키델릭록이 유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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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그래미 박물관에서는 사진가 짐 마셜의 67년 사진을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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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박물관에서는 미국 팝 음악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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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미국 역사책은 ‘히피 운동은 실패했다’고 기록한다. 아예 히피를 언급하지 않고 60년대에 반문화, 저항문화 운동이 있었다고만 기술한 책도 많다. ‘주류의 시선’으로 볼 때는 그렇다.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너무 이상적이고 급진적이었으니까. 그러나 50년 전 ‘삐딱이들’의 외침이 남 이야기 같지 않다. 다시 냉전 분위기가 고조되는 퇴행적인 시대를 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정보=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유나이티드항공이 인천~샌프란시스코 직항편을 띄운다. 매직버스는 5~9월에는 월·목·금·토요일, 9~4월에는 금·토요일에만 운영한다. 어른 70달러(약 7만900원), 학생 65달러. 드영 박물관은 월요일 휴무, 입장료는 어른 25달러, 17세 이하는 10달러. BAMPFA는 월·화요일에 쉰다. 입장료는 어른 12달러, 18세 이하 무료. LA 그래미 박물관 입장료는 어른 12.95달러, 어린이 10.95달러. 자세한 여행정보는 캘리포니아관광청 홈페이지(visitcalifornia.com) 참조.

샌프란시스코·LA(미국)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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