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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축배 든 프랑스 여론조사기관들, 그들의 성공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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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다음달 7일(현지시간) 열리는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 나란히 진출한 에마뉘엘 마크롱(왼쪽사진)과 마린 르펜.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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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론조사기관들이 샴페인을 터뜨렸다.”

미국·영국과 달리 프랑스 여론조사기관들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열린 프랑스 대선 1차투표 결과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는데 성공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1차투표의 진정한 승리자는 여론조사기관들이었다”고 평가했다.

오독사, BVA, 입소스, 오피니언웨이 등 8개 여론조사기관이 선거 직전 내놓은 여론조사결과를 종합하면 ‘앙마르슈(전진)!’의 에마뉘엘 마크롱 득표가 23.9%, 민족전선(FN)의 마린 르펜이 22.2%였다. 실제 투표결과는 마크롱이 24.01%, 르펜이 21.3%. 이정도면 ‘족집게’ 수준이다. 3, 4위를 기록한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이나 좌파 후보 장 뤽 멜랑숑도 여론조사와 실제 득표가 거의 일치했다.

■‘샤이 트럼프’는 있어도 ‘샤이 르펜’은 없다

지난해 브렉시트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틀린’ 여론조사결과를 그대로 보도했다가 체면을 구긴 영국과 미국 언론들이 프랑스 여론조사기관들은 어떻게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잇따라 분석결과를 내놨다. 극우 세력에 대한 익숙함과 적극적인 인터넷 활용, 높은 투표율, 여론조사 투명성 등 크게 4가지를 성공비결로 추렸다.

우파 포퓰리즘 세력이 선거판에 등장할 때 여론조사기관은 가장 힘들어한다. 주변의 시선때문에 속내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응답자가 많아서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지지를 끝까지 감췄던 ‘샤이 트럼프(숨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프랑스 대선에서 ‘샤이 르펜’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거의 그대로 실제 투표로 이어졌다.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인 클레어 듀란 세계여론조사협회 회장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프랑스 유권자들은 더이상 르펜 같은 극우 후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르펜의 아버지 장 마리가 1974년 대선에 출마한 이후 민족전선은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2012년 대선 1차투표에서 딸 르펜이 17.9%를 얻는 등 확실한 정치세력으로 자리잡는 데도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물을 마주해야 했던 미국 유권자들과 달리 프랑스 유권자들은 이제 르펜 지지를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유권자들 뿐 아니라 여론조사기관들도 오랜 기간 극우세력을 지켜보면서 그들에게 익숙해졌다.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민족전선 같은 극우파가 여론조사에서 어느 정도 과소평가되는지 알게됐다. 입소스의 제롬 포케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30년 이상 민족전선을 추적해왔고 이에 따라 조사 방법론을 적절히 조정해 왔다”고 말했다. 전화조사를 주로 이용한 영국·미국과 달리 인터넷 위주로 조사를 벌인 것도 보다 솔직한 응답을 끌어내는데 도움이 됐다. 오피니언웨이의 브루노 장바르트는 “인터넷 여론조사가 노년층의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가중치를 적절하게 적용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우리는 인터넷에 기반한 설문조사 경험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높은 투표율도 한몫

일관적으로 높은 투표율도 여론조사기관의 선전을 도왔다. 장바르트는 “실제로 투표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내는게 가장 힘들다”면서 “투표율이 높으면 높을 수록 여론조사가 틀릴 가능성은 낮아진다”고 말했다. 이번 프랑스 대선 1차투표율은 77.8%였다. 지난해 미국 대선때보다 20%포인트나 높았다. 영국 브렉시트 투표율은 72.2%였지만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라 여론조사기관이 표심을 예측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됐다. 영국의 여론조사 분석기관 넘버크런처폴리틱스의 맷 싱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때는 수십 년간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대거 탈퇴에 표를 던졌다”면서 여론조사가 결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프랑스는 이번 선거 뿐 아니라 2012년과 2005년 대선 때도 1차투표 투표율이 79.5%, 83.8%에 달했다. 줄곧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미국 선거예측전문가 네이트 실버는 1차투표를 앞두고 트위터에 “프랑스 여론조사가 기관마다 너무 비슷하게 나오는게 걱정스럽다”면서 “이정도로 일관된 결과가 나오는 건 기관마다 서로 결과를 보고 수치를 건드리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라고 썼다. 실제로 장마리가 리오넬 조스팽을 꺾고 결선에 진출한 2002년 대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2개 조사기관이 장마리가 조스팽을 제쳤다는 결과를 얻었지만 숫자를 조작했다. 조사기관 스스로 결과에 의심을 품은 것이다. 이후 여론조사 신뢰도를 문제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국은 여론조사때마다 관련정보를 제출하고 인터넷에 공개하도록 법제화했다. 지금으로선 프랑스의 여론조사 투명성이 미국보다 더 높다.

듀란 교수는 프랑스 여론조사기관들이 미국보다 훨씬 더 ‘솔직’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미국 여론조사기관들은 지지율 총합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예측했다. 반면 프랑스 조사기관들은 누가 이길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결과에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듀란 교수는 “오차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면서 미국이나 영국 여론조사기관이 프랑스에서 배워야 할 부분도 바로 이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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